책 읽는 중 정리: 완벽에 대한 반론(마이클 샌델, 김선욱 감수, 이수경 옮김, 와이즈베리刊)
생명공학(유전자 강화, 생명체 복제 줄기세포 연구 등)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감탄과 함께 무언가 불편한 감정을 가집니다. 신의 영역에 발을 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부작용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부작용은 영상으로 만들어질 때는 괴이함을 강조하여 불편함을 극대화시켜 두려움을 더욱 자극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의 원인은 우리 마음속에서 윤리적으로 생명공학에 대하여 불편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불편한 감정을 설명하는 책으로 이해하고 읽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적 불편의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저자의 글을 정리하면서 공부를 하는 의미로 이 글을 씁니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태반이므로 별도의 따옴표를 쓰지는 않겠습니다.
생명공학 기술의 네 가지 사례를 통해본 윤리적 문제
1. 근육 강화
근이영양증을 완화하거나 노화에 따른 근육 감퇴를 막기 위한 유전자 치료법이 아닌 운동선수가 유전자 기술로 신체능력을 향상한다면 어떨까에 대한 문제입니다. IOC 등이 운동선수의 유전학적 강화를 금지하는 이유는 안정성과 공정성입니다. 스테로이드는 인체에 해로운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또 이런 심각한 건강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약물을 통한 경기 능력 향상을 허용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경쟁 선수들이 불리하므로 공정성에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근육 강화 유전자 치료법이 안전하다고, 또는 적어도 혹독한 근력 트레이닝 방식보다 위험도가 높지 않다고 가정했을 때도 여전히 금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남은 문제, 즉 공정성의 관점에서 보면 유전적 강화로 인한 차이는 선천적인 차이와 마찬가지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공정성을 근거로 유전적 강화에 반대하는 논리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전적으로 남들보다 더 훌륭한 재능을 타고난 이들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선천적 불평등이 스포츠의 공정성을 훼손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도덕적 이유로 스포츠에서 유전적 강화를 반대하려면 공정성이 아닌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2. 기억력 강화
기억력 강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우리가 기억하기보다는 잊고 싶어 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고 주장할 것이지만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무언가를 잊고 싶은 욕구는 기억력 강화 약물에 반대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장을 열어주는 기회가 됩니다. 또 다른 비판은 인간이 두 계급으로 나뉘게 되는 위험을 지적합니다. 만일 강화된 기억력이 후대로 유전된다면, 결과적으로 인류는 기억력이 강화된 종과 자연적 기억력을 지닌 종으로 크게 양분되어, 두 계급은 인간의 하위 종적 구별이 될지도 모른다는 비판입니다. 공상영화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죠?
저자는 위와 같은 시나리오가 윤리적 불편함을 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으며 강화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생명공학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점 때문인가, 아니면 유전적 강화 기술을 누리는 부유층이 인간다움을 잃기 때문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기억력 자체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선결문제의 오류에 빠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근육 강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억력 강화에서도 근본적인 문제는 동일한데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강화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을 어떻게 확보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 기술을 과연 열망해야 하는가?’라고 설명합니다. 발전된 생명공학 기술을 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공학적으로 재설계하여 운명을 개선하는 것에도 적극 활용해야 할까요?
3. 신장(키) 강화
비판자들은 성장호르몬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성형 내분비학’이라고 부릅니다. 의료보험 지원을 받을 가능성도 낮고 비용이 매우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술을 통한 신장 강화에 공적인 보조금을 제공하여 불공평함을 해결하면 윤리적 불편함이 없어질까요? 저자는 우리가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달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자녀가 이미 충분히 건강한데도 그 자녀의 키를 몇 센티미터 더 늘리기 위해 거금을 써야 한다고 느끼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4. 성별 선택
성별 선택의 대표적인 방법은 양수천자 및 초음파를 이용하는 산전 검사입니다. 이 기술은 척추갈림증이나 다운증후군 같은 유전적 기형의 진단을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통해 태아의 성별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원치 않는 성별의 태아를 낙태하는 일도 가능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성별 선택이 낙태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착상 전 유전진단 과정을 통하여 배아를 선별하는 배아 선별법은 성별 선택을 위한 매우 신뢰할 만한 수단이라고 합니다.
이런 기술에 반대하는 진영의 어떤 이들은 낙태 논쟁에서 가져온 논거를 제시하면서 배아도 하나의 인격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낙태에 반대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배아 선별법에 반대합니다. 페트리 접시에 담긴 8세포기의 배아가 완전히 발달한 인간과 도덕적으로 동등하다면 그 배아를 버리는 행위도 영아 살해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낙태 반대론’에 기댄 반대론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 할지라도, 성별 선택 자체를 반대하는 논지는 아닙니다. 그것은 유전적 질병 판정을 위해 시행하는 착상 전 유전진단을 포함해 모든 종류의 배아 선별에 반대하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반대론은 수단(즉 원치 않는 배아를 폐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므로, 성별 선택 자체가 잘못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습니다. 정자 선별을 통한 자녀의 성별 선택에 반대하려면 배아의 도덕적 지위 논란을 넘어선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다. 성별 선택이 성차별(대개 여성에 대한)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 그런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 위치한 영리 목적의 불임클리닉이자 체외수정 연구소(GIVF)는 이런 우려의 목소리를 피해 갈 영리한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성비에 균형을 맞출 목적으로 자녀의 성별을 선택하려는 부부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똑같은 성별의 자녀를 여러 명 낳으려는 고객이나 첫째 아이의 성별을 선택하려는 고객은 이 기술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반대할 이유가 없어질까요?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위의 모든 사례에서 도덕적으로 불편한 감정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수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술이 지향하는 목적에도 있습니다. 유전적 강화와 복제, 유전 공학 기술이 인간 존엄성에 위협을 가한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충분히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들이 우리의 인간성을 ‘어떻게’ 손상시키는가 하는 점이라고 강조합니다.
그것들이 인간의 자유나 번영의 어떤 측면을 위협하는가?
궁금하시다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매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일기 : 인간이 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잘못인가?(마이클 샌델의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중에서 나오는 한 꼭지 글을 읽고서) 2 (0) | 2021.06.25 |
---|---|
독서일기 : 인간이 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잘못인가?(마이클 샌델의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중에서 나오는 한 꼭지 글을 읽고서) 1 (0) | 2021.06.25 |
시사in읽기 : 백신 부작용 의심되면 이렇게 하세요(714호 김연희 기자) (0) | 2021.05.26 |
책 읽다 든 생각 : 마루야마 겐지 ‘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0) | 2021.05.19 |
독서 후기 : 나는 길들지 않는다(마루야마 겐지, 바다출판사) (0) | 2021.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