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오늘묵상

오늘의 묵상 : 광인을 증인으로, 예수님에게 떠나달라고 요청하는 거라사인들은 우리더라.(누가복음 8:26-39)

무주이장 2021. 1. 15. 10:08

오늘의 묵상 : 광인을 증인으로, 예수님에게 떠나 달라고 요청하는 거라사인들은 우리더라.

(누가복음 8:26-39)

 

 예수께서 거라사인의 땅에 오셔서 한 사람에게 붙은 군대라 하는 많은 귀신을 떼어내, 돼지떼로 들어가게  명하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였다. 이에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려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였다.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거라사인의 땅 근방 백성들은 예수께 감사하거나, 치료된 광인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두려워합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치료된 사람은 보이지 않고, 호수로 들어가 죽은 돼지떼를 본 것입니다. 재산의 손실이 무척이나 큽니다. 여기저기 귀신 들린 자들은 부지기수입니다. 그들을 모두 치료한다면 마을의 돼지는 씨가 마를 것이라고 염려한 것입니다. 돼지가 없어지면 그다음은 양들도 호수로 달려갈지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마을을 떠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가 경제개발을 할 때는 사람의 목숨은 돈과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식의 부담을 걱정해, 부모는 치료를 거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병명을 알면 쓸데없는 걱정만 한다고 진단 자체를 거부하며 병원행을 거절하던 부모님들이 많았습니다. 때로는 자식이 아파도 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하고 마음 졸이던 부모가 부지기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일상은 없는 사람들의 전유물이긴 했지만, 그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많지가 않았습니다. 이런 가난만 극복하면 비인간적인 불행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시절을 극복하고 많은 사람들이 풍요를 즐기는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임계치를 넘은 가난과 궁핍을 벗어난 것입니다. 풍요로운 자본주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과거의 끔찍한 비극적인 상황을 이제는 벗어났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상황이 자주 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본주의 병폐라고 부르고 그중 하나를 물신주의, 물질만능주의라고 부릅니다.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돈이 많으면 함부로 다른 사람을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대상화되어 물질로 간주되어 사고팔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내 아이의 양육에 도움이 된다면 잠시 입양을 하기도 하고, 생각과는 다른 상황이 되면 입양아를 학대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수단이 목적을 전복시켜 인간의 양심과 권리와 의무가 전도되는 현상을 야기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에서만 있는 일이고 과거는 인간의 본심(그것이 선량하다는 증거는 없지만)이 살아 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거라사인의 땅에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거기에도 물신주의가 있습니다. 귀신들린 병이 나은 사람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축복의 인사 대신에 없어진 돼지떼를 걱정하며 예수님에게 마을에서 떠날 것을 종용합니다. 그 마을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는 귀신 들렸던 사람은 예수님께 동행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라고 하십니다.

 

 오늘도 정인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양부모의 처벌을 강하게 요청하는 내용의 기사들이 넘칩니다. 같이 살기도 싫은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여기를 떠날 수도 없습니다. 귀신 들렸던 사람이 결국에 했던 일을 우리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