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차이를 주장하며 차별을 행하다

무주이장 2020. 3. 17. 14:39


차이를 주장하며 차별을 행하다


아빠, 저는사실 동성애자예요

화들짝 놀라 잠을 깼습니다. 동성애를 혐오하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종교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사랑과 독선이 공존하는 현실에 실망하며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동성애를 선택하는 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의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동성애가 아직 어떤 이유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확인된 것이 없음에도 바꿀 수 있는 선택의 문제라며 포기를 강요하는 믿음이 횡행하는 것에 때론 분노합니다. 그건 동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남을 강요하는 범죄라고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강요의 세월은 지난 세월, 군사정권과, 보수를 가장한 극우의 세월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꿈이지만 두려웠습니다.


같은 이유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응원합니다. 단지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제도적으로, 관습적으로, 심리적으로, 환경적으로 제약과 억압과 차별과 때로는 혐오로 짓눌린 여성들이 차이를 인식하고 차별에 대항하는 태도를 응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페미니스트 운동이 지나친 응원에 힘입어,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 당한다는 주장을 하기까지 이르렀다고 우리사회의 20대 남성들이 생각하기까지 이르렀지만 여전히 여성들의 권리선언은 진행중이며 필요하다고 50대인 저는 생각합니다


고려대보건과학대학 김승섭교수님이 시사in에 기고한 글의 일부입니다. “모든 인간은 특정한 맥락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것을 아셔야 합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한국인이 한국에서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결혼 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에게 인종차별의 가해자일 수 있습니다. 남성이 권력을 가진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성과의 관계에서 약자인 여성들이, 시스젠더만을 정상적인 몸으로 취급하는 성별 이분법의 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와의 관계에서 기득권일 수 있습니다.” 


최근 숙명여대 법학과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입학포기를 강요당했습니다. “수술을 받고 여성으로 법적인 성별정정을 마친 A씨의 입학을 반대한 집단은 다름 아닌 숙명여대를 비롯한 여대 내 여러 단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남성을 여성으로 법적인 인정을 하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였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자유와 평등권을 주장하던 패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를 억압하고 강요하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은 권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익의 문제라고 저는 봅니다. 보편적인 것이라야 권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은 인간의 기본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이지, 상황에 따라 각각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편적 인권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이유입니다. 이익단체라고 부르는 이유는 권리를 주장해서가 아니라 이익을 주장하는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보편적인 권리라며 이권을 챙기는 것은 사기꾼들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 부리는 사술입니다


차이를 주장하며 차별을 비판하는 권리는 차이를 주장하며 차별을 행하는 우리들의 행위로 인하여 무색해지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데, 실패하게 되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것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피해를 전제로 이익을 취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살만하려면 깨어 있는 시민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연대만이 존재하는 세상은 충분히 살았고, 보았고 진저리를 쳤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권력층의 구호가 되던 세월은 근대사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숙명여대와 여대 내 여러단체의 구성원들은 연대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다치게 했습니다. 그 이유가 두려움이었던, 그 무엇이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동지 하나를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