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주는 1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온 뉴로셸시에 주 방위군을 투입해 3월 12일부터 2주간 ‘봉쇄존’을 발동하고 학교, 종교시설 등을 폐쇄했다.
(관료들은 무능하고 대통령은 안이하다. 워싱턴. 정재민 편집위원)
우리나라의 상황은 3월 22일 서울 일부 대형교회가 정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현장 예배를 강행했다.
200년 전 1820~1830년대에 전 지구적으로 일어난 팬데믹은 콜레라였다(중략) 당시 런던의 상류층 평균 기대수명은 38세, 노동자의 그것은 17세에 불과했다.
(팬데믹 시대 죽은 자의 사진, 이상엽(사진가))
그렇다면 산업혁명시대에 아동노동이 저임금과 오랜 노동시간으로 이어진 것은 일찍부터 노동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적 문제였을까?(17년 중 일하는 시간을 절반만 계산하면 8~9살일 테니???
집요한 물음표 대신 경박한 느낌표만 쏟아내기 바쁜 한국 기자들에겐 특히 남 얘기가 아닐 것이다. “정자와 기자가 사람 될 확률은 수천만 분의 일”이라는 댓글에 크게 웃은 뒤 이내 서글퍼지는 한국 관객에게야 말할 것도 없고
(꼭 챙겨 보아야 할 언론 이야기 (신문기자), 김세윤(영화칼럼니스트))
한 번 사정될 때 나오는 정자의 수는 2억~3억 개라는 걸 생각하면 기자가 사람 되는 확률이 지나치게 높게 잡혔다는 불쾌함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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