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역사왜곡 논란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는 영화의 영향력이 꽤 되는가 보다. 사극을 보면서 역사왜곡을 말하는 구석을 짐작해보면 이 영화가 주는 영향력을 모두 걱정하는 말투이고 논리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눈들이 다르니 다른 시각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 시각의 차이를 인식하며 영화를 보는 것이 모두 즐거움이다. 다만 그래서 다른 시각은 불필요하고 없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강요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도입부에 있다는 ‘이 영화는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자막을 보지 못했다.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이 영화가 역사에서의 정설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았다. 한글 창제에 대한 전문가의 도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영화 속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의 섬세함과 독창성과 창작능력에 감복했다. 그걸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소리문자를 만들면서 다른(나라의) 소리문자의 원리를 연구했을 것이라는 발상의 전개
2. 다른 소리문자를 연구하면서 발전시킨 소리문자가 창제되었을 것이라는 발상을 우리 현실 상황에서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능력(가야금 연주를 통하여 문자를 더하는 발상 과 합자를 만드는 과정 등)
3. 기득권층이 새로운 문자 창제를 반대하는 생각과 모습들, 이와 대치하는 왕과 왕후와 한글 창제 세력이 존재한다는 발상과 이들의 갈등을 충분히 공감가게 설명한 내용
4.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영화 곳곳에 적절히 배치한 대사의 현실적 감각
신미와 세종이 만난 때가 한글의 창제 이후이고, 불교의 중(스님)들이 문자 창제의 실
제 주인공이 아니고 집현전 학자들이 주체다라는 설명을 하면서 영화가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왜?
영화 어디에서도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은 없다. 그럼에도 역사왜곡
을 말하는 것은 누구도 그런 주장이 없음에도 없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논리의 구석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영화의 영향력을 걱정하
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영화의 어느 장면과 대사에서의 영향력을 걱정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다. 정리한다.
1. 한글이 다른 나라의 소리 문자에서 창제 원리가 시작되어 독창성을 폄훼한다는 설명이다. 기분이 나쁘긴 하겠다만 독창성이 갑자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듯 없는 것에서 있는 무엇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상 무겁다. 사람이 한 일들이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2. 불교를 믿는 중이 한글을 창제한 주축 세력이라는 것이 못마땅하게 생각되는 것도 있겠다. 이들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영화에서 한 대신이 “이단”을 주장하며 궁에서의 천도제를 폄하하는 대사였다고 생각했다. 못마땅하면 반대가 극단적인 것이 비록 불만이지만 말이다. 집현전의 학사가 다른 유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정설보다는 유가가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중들이 유가가 반대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는 발상이 훨씬 현실감 있고 극적으로 보인다. 영화 시나리오는 이렇게 써야 재미있다. 시나리오가 아니라 논문이라면 나도 뭐라 비난을 하겠다.
3. 영화에서는 줄곧 기득권층인 중신들이 사대를 주장하며 백성을 생각하는 왕에게 대든다. 대드는 논리 어디에도 백성이 없다. 그들의 사고는 자기 중심적이며 자기 이익을 위하여 대국의 논리를 빌려 쓰는 비루함과 뻔뻔함이 있다. 2019년을 사는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과거의 일들을 현실의 생각을 기반으로 창작할 자유가 있으며 이를 잘 하는 작가가 훌륭한 작가일 것이다. 공감이 가니 하는 말이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나 해석은 오늘의 일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4. 영화에서는 한줌 밖에 안 되는 기득권층 중신들이 언문이라고 폄하한 한글을 왕과 신미 등 창제 세력들이 스스로 ‘언문’이라고 이름 붙인다는 설정을 한다. 낮고 형편없다는 뜻 외에 끈질기고 강하다는 뜻도 있다는 설명을 하면서 말이다. 남들이 비루하다고 폄하하는 것을 비틀어 자기 것으로 정착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힘을 펼치는 모습에서 삶의 강인함과 열정과 도전과 항쟁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역사적 정설에서는 배울 수 없는 창작의 영역에서의 뒤집어 보기의 묘미라고 나는 본다.
5. 철저히 고립된 왕과 철저히 배척되어 ‘개’라고도 불리는 중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는 주축 세력이라는 것에서 불편한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보였다. 새로운 문자는 새로운 권력을 만든다며 조선이 세종 당신만의 나라가 아니라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대신조차 가만히 들어주는 왕에게서 언론의 자유를 연상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도끼를 두고 상소를 하는 대신들을 향해 “고생이 많다”고 하며 “너흰 너희 일을 하라. 나는 나의 일을 하겠다.”는 의연한 왕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6. 왕이 한글을 창제하는 목적과 신미의 목적이 다른 것을 갈등으로 넣은 것도 영화의 긴장감을 더했다. 결국 한글의 반포 선언문이 왕과 대신들에 의해 나뉘어 작성되었다는 설정과 ‘훈민정음’이라는 가르침이 풍만한 이름이 만들어지고 관에 의한 한글의 보급 외에 신미와 왕후의 몸종들이 한글 보급을 한다는 설정도 정치감과 현실감을 더했다고 보였다.
7. 마지막으로 “누구든지 복숭아 속에 있는 씨는 봅니다. 하지만 그 씨 속에 얼마나 많은 복숭아가 든지는 모르지요.” 왕과 신미의 대사 속에서 우리는 영화의 영향력을 두려워하는 모습의 진정한 구석을 보고 있는 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추신. 영화 속의 대사는 나의 기억으로 쓴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뜻으로 ‘나는’ 이해한 것이므로 왜곡했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추신 더. 이 영화 재미있습니다. 왜곡이라고 뭐라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지능이낮게도 사실로 보고 있다는 전제를 하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사람들은 ‘그 정도 이상’은 다 되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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