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 뽑기 아르바이트의 정서 1
새치를 뽑으면 하나에 일 원씩 준다며 어린 아이 옆에 베개를 두고 눕던 할머니와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은 보기 힘든 광경입니다. 할머니와 어머니 어떤 때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까지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제공했던 그때를 회상합니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시절이 지나가는 시절이었습니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더욱 극심해진 가난한 시절을 한 숨 돌리며 지나가던 그 시절 저는 태어났습니다. 그래도 세 끼 밥을 먹을 수 있었던 시절로 기억합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받은 월급으로 제일 먼저 쌀 한 포대와 밀가루 세 포대를 사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달도 우리 식구 먹을 양식을 마련했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매일 먹어야 하는 밀가루를 어머니는 하루는 칼국수, 다른 날은 수제비, 칼국수에 감자를 넣거나, 호박을 넣거나 부추를 넣거나 고명을 달리하며 주구장창 하루에 한두 끼는 밀가루를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 식단이 저는 질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맛있기만 했습니다. 저보다 8년이나 뒤에 태어난 배우 고 최진실 씨는 칼국수나 수제비를 가난의 상징음식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두 번 다시 먹지 않는 음식이라고 인터뷰를 할 때 저는 제가 가난에 둔감한 것이 아닐까 생각 들기도 했지만 지금도 저는 칼국수나 수제비 국수 등 밀가루로 만든 것이라면 좋아합니다.
저의 행운은 세 끼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거기까지였습니다. 학교 앞이나 동네 골목에서 팔던 번데기나 왕눈깔사탕은 쉽게 먹을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수중에는 현금이 없었습니다. 있어도 지출 순서가 정해져 있어서 아이들의 군것질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부부싸움을 하면서 간혹 아이들의 군것질이 의외의 순서로 앞서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도 말뿐이었습니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걸 노름으로 날리고 들어와.” 안타까움과 아쉬움 그리고 배신감으로 이웃집까지 들리던 아내의 고함 뒤에 아이들의 군것질이 싸움의 마지막 장에서 힘 없이 들리곤 했습니다.
“차라리 아이들 과자라도 사다주지.”
“사람이 밥만 먹고 사냐?”는 말이 회자되기 훨씬 전부터 아이들은 밥만 먹고 사는 궁핍과 결핍을 본능으로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베개를 놓고 누우시며 새치 하나에 일 원이라는 아르바이트를 주시면 냉큼 달려들었던 지도 모릅니다. 수십 개를 뽑고도 오 원만 주시는 어른들에게 부당행위라며 달려들지 않았던 것도 오 원으로 왕눈깔사탕을 살 수 있고 그 사탕이 다 녹는 시간까지 늘 찾고 싶었던 행운과 행복을 찾았던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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