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독서정리노트:하나님의 열심-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다윗과 엘리야

무주이장 2018. 5. 16. 11:26

하나님의 열심.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박영선 지음. 무근검 출판

- 무근검은 남포교회출판부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무근검은 ‘하나님의 영광은 무겁고 오래된 칼과 같다’라는 뜻입니다.


서문 중(7쪽)

‘성경 속 인물들을 더 이상 위인으로 여기지 않으며, 그들처럼 살아보겠다는 열정도 희미해진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전제로 출발하여 따져 물어도 하나님의 열심은 오늘도 한결같이 모두에게 충만히 다가올 것입니다.’

‘불변하고 여일한 이 열심 앞에 기꺼이 항복하는 복된 신자가 되기 바랍니다.’




다윗(DAVID)

파란만장한 다윗의 생애는 ‘영웅이란 무엇인가’보다 오히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나는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라고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승승장구하는 다윗, 몰락하는 다윗)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의 최전방에서 전사하게 한 사건 일명 ‘밧세바 사건’은 성경에서

가장 추악한 사건이 아님에도 이 사건이 다윗에게 심각하게 와닿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318쪽)


(인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

‘앞서 언급한 구약의 제사 제도에서 다룬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구약시대에 죄 씻음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상징하기 때문입니다.’(322쪽)

‘다윗이 겨우 물맷돌 몇 개로 장사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 왕을 해하지 않고 살려 준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신앙이 아니라 자기 열심에 근거한 하나의 종교 행위요 도덕적 선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조건을 자기가

충족하려 하거나 구원의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본성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도 제사를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밧세바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죄밖에 지을 수 없는 존재구나.

하나님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 아무리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눈부신 성취를

이루어 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본질상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324쪽)


(당신이 그 사람이라)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가 이 일을 겪고 나단의 지적을 받은 후에야 모태에서부터 이미 죄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실체, 인간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 점이 밧세바 사건의 핵심입니다.’(326쪽)

‘시편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설령 인간이 가장 선한 일을 행하더라도 그것은 죄입니다. 인간이 가진 도덕 자체도 죄성을 지닌 인간이 만들어 낸 산물이기

때문입니다.’(327쪽)

‘다윗의 밧세바 사건과 야곱의 얍복 나루 사건, 베드로의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건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인간은 무엇인가를

철저히 깨닫게 됩니다.’(328쪽)

‘예수님의 산상설교에서 팔복 중 가장 먼저 언급된 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복을 받으려면 심령이 가난해져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복이 있는 자는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 라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이런 질문 앞에 뼈아픈 좌절과 몸부림을 경험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구세주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328쪽)


(영원한 대속자 예수)

‘인간의 죄를 대속할 존재는 소나 양과 같은 제물이 아니라 메시아뿐임을 깨달은 것입니다.’(330쪽)

‘성공과 승리로 가득 찬 인생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님을, 자기 증명에 불과한 확신은 진정한 믿음이 아님을 밧세바 사건을 통해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열심을 쏟아 다윗의 생애와 그 인생의 흥망성쇠를 주관해 오셨던 것입니다.’(333쪽)

‘다윗의 생애는 밧세바 사건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334쪽)



엘리야(ELIJAH)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한 엘리야가 이세벨의 위협에 혼비백산하여 숨어 들어간 일을 통하여 엘리야에게 드러난 하나님의 열심을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세미한 소리 가운데 임하시는 분’이란 무슨 뜻일까요? 모두가 알아보고 알아듣는 방식으로 임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들을 귀

있는 자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능력과 권세를 지닌 모습으로 나타나 주시지 않는 것 때문에

우리는 혼란을 겪습니다.’(339쪽)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엘리야가 오해 했습니다. 거듭난 자만 볼 수 있는 하나님을 누구나 볼 수 있을 거라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형통하게 사는 것을 보며 하나님이 당신의 권능으로 속히 그들을 심판하시지 않는 현실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하지만 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343쪽)

(천국의 비밀, 천국의 신비)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복음입니다. 천국 말씀입니다. 복음은 거듭난 자가 아니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천국은 거듭난 자가

아니면 보아도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와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나 천국일 수 있다는 말도 되는 것이죠? 거듭나면요.)

‘겨자씨 비유’는 우리도 겨자씨처럼 무성한 나무가 되자라고 적용하지 마십시오. 이 비유의 목적은 적용에 있지 않습니다.

천국이 겨자씨 한 알처럼 작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누룩 비유’는 천국이 분명히 와 있는데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삼켜 버렸기에 부풀기 전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세상이 복음을 믿는 우리를 삼켜 버렸기에 우리는 괄시를 받고 이 땅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세상 속을 살아가는 신자가 겪는 억울함입니다.

‘그물 비유’ 추수 때에 가면 의인과 악인이 갈리겠지만, 그 전에 천국은 마치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 모으는 것 같다고 합니다.

지금 천국은 판정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초대하기 위해 와 있는 것입니다.--심판을 연기하려면 하나님의 높으심과 영광이

감춰진 모습으로 우리 곁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천국이 감춰진 모습으로 와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판가름하는 날이 옵니다.’(350쪽)

‘목사가 설교를 잘 한 것이 믿게 된 이유는 아닙니다. 믿게 되었기에 설교가 와닿았던 것일 뿐입니다.(351쪽)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까)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도 자기가 기대했던 메시아와 다른 모습의 예수님을 보며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악을 모조리

전멸하고 소탕하는 심판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병든 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생명을 주는 구원자로

오신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이 메시아가 아니면 누구란 말입니까’(353-355쪽)

‘지금은 하나님이 무너뜨리지 않으시고 세미한 소리 가운데 임하셔서 일하고 계십니다.’(356쪽)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재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해야 하는 괴로운 선지자였습니다. 갈멜산의 임재와 호렙산의 부재라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당신을 경험하게 하십니다.--부재 가운데 오히려 더 강하게 당신의 임재를 드러내시는 역설의 신비를 엘리야는

그의 온 삶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357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