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마을 5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글항아리 간행 5

그르친 일 한때 경로사상이 유난히 강조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경로석은 지금도 있습니다. 50대 늙은이들은 간혹 그 자리에 앉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은 좀체 그 자리에 앉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한창 노인과 청년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는 젊은이들도 의도적으로 경로석에 앉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반발을 표시한 것이지요. 경로석보다는 임산부석을 만들라는 충고도 있었습니다. 경로석을 두고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버스나 지하철에서 훈계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경로석에 앉은 젊은이들을 나무란 것인데 그 정도가 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인들이 권리로 인식하곤 자기의 권리가 침해당한 것에 대해 따지면서 젊은이들을 일반화해서 비난을 하는 것이 패턴이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있는 말을 한 겁니다. “요즘 젊은..

매일 에세이 2024.01.30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글항아리 간행 4

봄의 걸음걸이 제가 3년 전에 농장주와 같이 보살폈던 사과 과수원은 고작 300주의 과수만 있는 조그만 밭입니다. 주말이면 반드시 내려가서 나무를 만나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벽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밭에 있어야 했습니다. 매주 내려간다고 했던 계획도 틀어져 2주에 한 번 내려가는 것으로 바뀌다가 다른 일이 있으면 그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주를 쉬면 그만큼 밭일은 늘어나 있습니다. 일 년의 경험으로 그쳤습니다.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으니 남의 밭만 망치는 꼴이었습니다. 농장주의 건강도 나빠져 이웃의 다른 분에게 밭을 넘겼습니다. 서툴렀지만 그래도 바삐 보내며 과수를 다루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불과 3년 전과 작년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냉해를 걱정하는..

매일 에세이 2024.01.29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글항아리 간행 3

쥐와의 공유경제, 다른 경험을 듣다 식량 자급자족이 초미의 관심사이고 다급한 국가 정책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북한군 장교가 이장을 잘 따르는 주민들을 보면서 그 비결을 묻습니다. 이장은 간단하게 답을 합니다. “잘 멕여야 돼” 그 짧은 대사가 선답으로 들렸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답에 귀가 뚫리고 세상이 보였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정권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국민들이 없게 하려면 굶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그래서 식량 자급을 위한 독려에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모자라는 쌀을 대신해 보리쌀 밀 같은 잡곡을 섞어 밥을 짓게 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하며 혼식을 강요했습니다. 쌀밥은 각기병을 일으킨다고 하면서 어린 학생들을 위협하기까..

매일 에세이 2024.01.26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글항아리 간행 2

꽃 한 송이에 미소 짓다 작가는 들판 비탈에 누웠습니다. 들판의 풀들이 모조리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풀이 산들바람 속에서 허리가 끊어져라 웃고 있습니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풀도 있고, 입술을 반쯤 가리고 웃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쓰는 풀도 있습니다. 작가 곁에 꽃 두 송이가 있습니다. 한송이는 작가를 보면서 얇은 분홍빛 꽃잎을 펼치는데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다른 한 송이는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가렸지만 웃음을 감추진 못합니다. 작가도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합니다. 빙그레 미소 짓다가 하하하 웃음을 터뜨립니다. 황야에서 혼자 소리 내어 웃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밀밭 남쪽에 있는 풀 속에서 자다가 웃었습니다. 작가는 한 조각 푸르른 풀밭이 너무 좋답니다. 더없이 짙..

매일 에세이 2024.01.25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글항아리 간행 1

중국도 고향을 잃는 중인가 봅니다 류량청은 1962년 중국 신장 사완현에서 태어나 농사일로 잔뼈가 굵으며 자랐고 향토문학작가로 불리는 유명인이라고 합니다. 처음 책을 소개하는 내용을 접했을 때는 한 사람을 키우는 마을의 사람들을 얘기하는 책인 줄 알았습니다. 잘못 알았지만 ‘한 사람의 마을’이나 ‘한 사람을 키우는 마을’이나 둘러치고 메치면 형태를 틀어 숨겼던 말을 꺼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가축을 키우며, 들을 일궈 농사를 짓는 마을 사람들과 섞이면서 일어나는 상념들은 나귀의 속에도 들락거리고, 토끼길을 쫓기도 합니다. 밀을 수확할 때는 밀과 대화하고 수확을 마무리할 때는 홀로 일하며 자신과 대화합니다. 마을 주위를 배회하던 사는 꼴이 변변치 못한 늑대와도 눈싸움을 하며 대화를 시도하기 조차합니다. 먹..

매일 에세이 2024.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