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서울살이 경험
저는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울 본사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조그만 월급으로 방을 얻고 출퇴근을 하면서 주말이면 부산 집을 왕복했습니다. 당시는 토요일에도 오전 근무를 해야 했고, 기차나 고속버스의 예약 기능은 거의 없었습니다. 회사가 있었던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서울역을 가는 시간과 역에서 기차표를 끊는 시간이 길기도 했지만 남은 기차표가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반포의 고속버스터미널을 주로 이용했습니다. 오후 1시가 퇴근 시간이지만 양해를 구하고 12시 점심을 거르고는 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버스표는 그래도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늘 표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경부고속도로의 상황이 너무나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천안까지 4차선 공사를 하느라 주말 고속도로는 늘 체증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지금은 고속버스가 전용차로를 이용하니 조금은 나았지만,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는 훨씬 뒤인 1995년 2월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지금은 버스가 출발하면 즉시 잠을 청하고 잠이 깨면 절반은 도착할 시간이지만 당시 3시간이 지나도 대전을 통과하기 어려웠습니다.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 출발한 고속버스는 심할 경우 밤 11시에 도착하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 직장생활이었겠습니까? 신입사원이라 다른 지역으로의 전출을 요청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인사부에 근무한 상황이라 인사발령장을 각 부서에 전달하는 업무도 하였기에 그 과정에서 부서장들에게 저의 상황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하여 측면 지원을 받고, 인사과장과 부장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채 1년이 되지 않아 울산을 거쳐 부산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서울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밀려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로도 출장을 가면 회사동기들과 술도 한 잔 하고 하룻밤 자고 오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막상 김포 공항에 도착하면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일을 보고 바로 내려가겠다며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다시 서울로 와서 생활한 것이 20년을 넘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은 경기도에 있지만 거기에서 산 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이사와 6년이 지나서야 지금의 집이 내가 사는 집이라는 생각을 하였으니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향수병 비슷한 아픔을 늘 갖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어떤 날 무작정 부산 근처의 바닷가를 찾아 몇 시간 하염없이 파도소리를 듣고는 올라오기도 했으니까요. 서울에서 적응하여 잘 사는 이웃들을 보면 무척 부러웠습니다. 이런 제가 느낀 서울살이의 특권을 몇 개 정리할까 합니다. 정보라의 소설 중 머리카락을 읽으며 정리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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