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조용한 죽음(1979), 존 필저.
존 필저의 캄보디아의 조용한 죽음을 읽고 있으면 캄보디아라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갑자기 이웃의 이야기로 생생하게 들립니다. 그들이 겪은 고통을 같이 느끼게 되고 그들의 해방을 기원하게 됩니다. 캄보디아 국민이 겪은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에 대한 미움과 캄보디아 국민의 해방을 방해하는 외세에 대한 저항감이 생깁니다. 간혹 전해 들었던 캄보디아의 역사는 무미건조한 사실의 연속이었지만 존 필저가 말해주는 캄보디아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연대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겠다는 소망을 갖게 하고, 소망을 이룰 현실적 힘에 대한 열망이 강해집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외세의 강압적인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현실적인 힘을 기대합니다. 우선 위키백과를 통하여 캄보디아의 현대 역사를 살펴보고, 존 필저의 글을 요약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역사를 모르면 왜 이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는가에 대한 이해가 추상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캄보디아의 현대 역사 1
캄보디아 왕국(1953년 - 1970년)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반둥 회의, 반둥, 인도네시아)에서, 시하누크는 비동맹·중립 외교 정책을 표명했다. 아버지 노르돔 스라마릿트에게 왕위를 이어받아 인민 사회주의 공동체(산쿰)를 조직했다. 독립의 아버지로서 국민의 인기를 끈 시하누크는 같은 해 선거로 수상 겸 외무부 장관으로 취임하였다.
1956년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에 가맹을 거부하였다. 1960년에 국왕 스라마릿트가 사망하면서 시하누크는 왕위를 비운 채로 국가원수라고 하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수반에 취임하였다. 1965년 5월 시하누크는 북베트남에 폭격을 행하는 미국과의 단교를 선언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국내는 어수선하였지만 시하누크 정권 시대에는 내전은 격화되지 않았고, 식량이 풍부하여 수입에 의지할 필요도 없었으며, 대량의 난민도 발생하지 않았다.
(캄보디아 영역 내의 북 베트남군 및 남베트남 해방민족전선(베트콩)의 대규모 보급 기지의 존재, 공산군에 대한 보급양륙항으로서의 사용, 은밀한 정보 수집, 사보타주 및 남베트남군과 미군에 의한 영공 비행은 캄보디아의 내키지 않은 중립을 선택하게 했다. 그러나 1965년 2월에 미국이 북 베트남의 공습을 단행(→베트남 전쟁)하면서, 시아누크 정부는 대미 단교를 단행해, 남베트남 해방민족전선의 거점이 되었다. 미국은 인도차이나 안정과 전쟁의 수행을 위해서, 캄보디아에 친미적인 정권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캄보디아 내전의 원인,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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