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류의 기원: 틱타알릭 1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되기 전에도, 일부 과학자는 양서류와 폐어 사이의 유사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화석 기록에 나타난 폐어와 초기 양서류 사이의 간극은 절망스러울 정도로 컸다. 더 많은 화석이 발견되면서, 많은 폐어와 다른 육기어류가 데본기 후기(3억 8500만~3억 5500만 년 전)에도 살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석탄기 초기(3억 5500만~3억 3100만 년 전)가 되자 의심할 여지없이 양서류임이 확실한 동물이 조금씩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의 화석은 석탄기 후기의 암석에서 훨씬 더 많이 발견된다. 그렇다면 전이화석은 어디에 있을까? 바닷물고기의 화석이 있는 데본기 후기의 화석 발굴지는 많이 발견되었지만, 민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곳과 어류와 양서류 사이의 접점에 있는 화석을 얻을 가능성이 높은 곳은 많지 않았다.
돌파구는 우연과 정치적 방편을 통해서 나왔다. 1920년대에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동그린란드가 어느 나라 땅인지를 놓고 다투고 있었다. 덴마크는 1931~1933년 여름에 이 거대한 섬을 찾아갔다. 덴마크의 원정대 대원들은 동그린란드에서 충분한 과학 연구와 탐사를 수행함으로써, 노르웨이가 탐사한 적이 없는 그 지역에 대한 자국의 영토권을 인정받게 되기를 희망했다.
동그린란드 탐사에 참여한 과학자 중에는 스웨덴의 고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인 군나르 세베-쇠데르베리도 있었다 그는 곧 놀라운 동물 화석들을 발견하고 익티오스테가와 아칸토스테가라고 명명했다. 에우스테놉테론과 매우 비슷한 오스테올레피스 같은 원시적인 육기어류와 많은 폐어도 발견했다. 모두 민물이나 약간 소금기가 있는 물에서 헤엄을 쳤던 종류였는데, 당시는 동그린란드가 열대기후에 가까웠고 물고기의 시대인 데본기가 끝나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세베-쇠데르베리는 1948년에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세베-쇠데르베리가 죽은 후에 그의 그린란드 화석을 연구한 인물은 고생물학 ‘스톡홀름 학파’의 창시자인 에리크 스텐셰의 후임자인 에리크 야르비크였다. 야르비크가 1996년에야 익티오스테가를 완전하게 기재하여 발표했기 때문에, 세베-쇠데르베리가 처음 복원했던 화석은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기록이 발 되어 있는 유일한 ‘양서어류fishibian’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익티오스테가는 에우스테놉테론과 초기 양서류 사이의 전형적인 전이화석이 되었다.
1980년대에는 ‘양서어류’ 연구의 본거지가 스웨덴에서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옮겨갔다. 여기서는 더 많은 화석을 적극적으로 수집했고, ‘스톡홀름 학파’ 고생물학자들의 연구를 다시 수행했다. 훨씬 완벽한 아칸토스테가 화석이 발견되자 우리의 연구는 크게 약진했다. 1952년에 야르비크는 거의 연구가 되지 않은 빈약한 자료를 토대로 아칸토스테가를 명명했다. 그러나 클락과 그녀의 연구진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수집한 새로운 화석들 덕분에 아칸토스테가에 관한 자료는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완벽하고 유용한 정보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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