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10세기의 관습적인 중국사 : 당나라 정치질서의 붕괴
“역사가들은 공통적으로 안녹산(이민족인 튀르크족과 소그드 계통의 사람이다)의 반란을 계기로 당나라가 쇠퇴 단계에 진입했다고 본다. 9세기 후반 황소의 난이 귀족 가문에는 좀 더 파괴적이었다. 당나라는 이러한 궤멸적 반란 이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당나라 질서의 근간이 무너져갔다. 군사를 지휘하는 절도사는 원래 정규 관료제 외부에 존재하는 특별 파견 담당관에 불과하였다. 8세기에 조정의 행정적 통제 기능이 약화되자, 조정은 국경 방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절도사를 공식적으로 제도화하였다. 한편, 국경에 군사적 기반을 가진 적수가 중앙 조정에 들어오는 것을 사전에 막고자 이임보(683~753)는 오직 비중국계 전문 군인만 절도사가 될 수 있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한족과 비한족의 공생, 중앙과 지방의 공생이 해체되고 만 것이다. 조정은 군사적 기반이 없는 한족의 영향권에 들어와 있는 반면, 국경의 절도사들은 점점 더 많은 독립적 군사 권력을 누리게 됨으로써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지방 통치자가 되었다. 다른 한편, 중앙 정부는 환관들이 좌지우지하게 되었다,”(320~321쪽)
“의미 심장한 변화는 세금 수취에 관한 정부의 직접적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었다. 안녹산의 난 이전에는 중앙정부가 균전제를 통해 그럭저럭 세금을 수취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안녹산의 난을 이 시스템을 파괴하였다. 중앙정부의 세수 기반이 급격히 축소되면서 이제 세금을 걷는 일을 지역의 절도사들에게 의존해야만 했다. 힘을 키운 절도사들은 결국 거둔 세금을 중앙정부에 넘겨주기를 거부하였다. 중앙정부가 지속적으로 권력을 잃어가던 907년, 절도사인 주전충(852~912)이 당나라 마지막 황제를 살해한다.”(320~324)
“당나라 정치체는 성층화된 피라미드였다. 최정상에는 최고의 권력을 누리는 황제가 자리하고, 다른 사회 구성원은 그의 신민으로서 서로 다른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통합된 전체로서 정치체는 그것을 이루는 부분들이 차지할 위치, 그리고 부분들이 서로 간에 맺을 외적인 관계를 정의하였다. 각 행위자는 엄격한 사회적 규칙에 맞추어 행동해야만 했다. 따라서 사회적 순응성은 자발적이고 선제적이고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외적으로 존재하는 규칙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사회의 장애물은 인간의 욕망, 열정, 유혹들이었다. 사회적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고급문화(귀족들의 唐詩)에 접근할 수 있는 집단이 있었다. 그리고 사회적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는 농촌 마을의 분절된 문화 속에서 사는 뭇 대중이 있었다. 이 두 층을 연결하는 접착제는 불교(그리고 도교)였다.”(324~338쪽)
“당나라 시기에는 대체로 ‘사람’이라는 범주가 가장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도덕적.내적 실체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외부에 존재하는 기준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윤리적 행위란 내적인 도덕 기준을 준수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외적인 코드에 맞춰 행동하는 일이었다. 이는 외부로 드러난 행위가 자신의 사회적 배경을 나타내게끔 되는 당나라 문화와 잘 들어맞는다. 이에 비해 도학은 당나라 귀족 문화에 대한 강력한 대안으로 등장한다. 도학은 ‘사람’이 아니라 자아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내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내성의 목표는 자기 안에 있는 도덕적 자아를 판별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이 도학이 세계를 다스리는 방법을 설명하는 정치 이론으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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