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미움은 정작 미워하는 자를 피하여 엉뚱하게 날아간다.

무주이장 2019. 1. 22. 14:05

 

미움은 정작 미워하는 자를 피하여 엉뚱하게 날아간다. 

 

 영화 보러 갑시다

 

난 영화 보러 안 갈 거야아내가 제일 먼저 반대했습니다. 

 

무주에 오면 늘 첫날 저녁에는 산골영화관을 찾아 마지막 상영되는 영화를 봅니다. 어제 보려던 영화관람은 김장 준비로 오늘로 미뤄졌고 김장을 마친 일행을 보면서 상영시간을 확인한 후 제안을 한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저녁을 먹고 7시가 넘어 출발하면 부산을 가는 분들과 용인으로 가는 우리들의 여정이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기에 마치  불문율처럼 지켜지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었습니다. 

 

최근 같이 무주를 오기 시작한 부산 예쁜 엄마도 반대를 했습니다.  피곤하니까 쉴래요그렇게 영화관을 가는 계획은 무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이 나를 흥분하게 했습니다. “한 삼십 분 쉬었다가 갈려고요. 늦게 출발하면 부산 도착시간이 너무 늦더라구요”  제가 알고 있었던 불문률이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섭섭함이 몰려왔습니다. 지금이 4시고 삼십 분 후면 4시 반이니 그 시간이면 용인으로 가는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한두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럼 나는 영화 보러 갑니다.” 그러고는 바로 집을 나오려고 하니 예쁜이 엄마가 그럽디다. “아니 그러면 재원 엄마만 남는데요나는 아내를 쳐다보았습니다. 영화관을 따라 나서려는 태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집에서 쉬어요그러고는 휑하니 집을 나섰습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가 4시에 시작되는 것을 알기에 더 늦지 않으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섰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는 단 몇 초의 지루함도 없이 재미있었습니다. 비록 한 켠에 찝찝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가진 섭섭함이 더 컸습니다. 

 

영화를 보고 집에 오니 부산으로 갈 사람들이 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쁜 엄마가 내게 따졌습니다. “아니 혼자서 영화관을 가시면 재원 엄마는요? 어떻게 혼자 있게 할 수 있습니까?” 

 

나는 그녀의 말이 성가시고 상황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에 대한 미움이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것을 밟고는  대답을 했습니다. 

 

영화 보러 안 간다매요 나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았습니다. 농담처럼 내게 말을 걸던 예쁜 엄마는 나의 예상치 못한 대응에 뒤로 물러섰고 분위기는 갑자기 냉랭해졌습니다. 

 

봐 예쁜 엄마. 무슨 말인지 모른다니까아내의 말이 들렸습니다. 

 

나는 예쁜 엄마가 미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생각한 불문율이 단숨에 깨어진 것에 대하여 섭섭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미워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취미인 영화보기를 같이 좋아해주지 않은 아내에 대한 미움이고, 부산으로 갈 사람들이 일찍 출발하면 같이 출발하지 못할 우리에게 남는 시간을 영화보는 것으로 재빨리 바꾸지 않았던 아내에 대한 미움이었습니다. 혼자서 남아 쉬려면 혼자서 어디 잘 쉬어 보라고 하는 마음으로 영화관을 간 것입니다. 남의 시골집에 덩그러니 놓여서 무서움을 타보라는 나쁜 마음이 있었던 겁니다. 영화관에서 잠깐 들었던 찝찝함은 나의 못난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미움이 예쁜이 엄마에게 날아간 것입니다. 

 

미움은 그렇게 정작 미워하는 사람을 피하여 엉뚱하게 날아가고들 합니다. 

 

P.S. 피곤한 아내를 위하여 집에서 같이 쉬면서 부산 이웃들을 배웅하는 방법이 옳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움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 참 엉뚱하기도 합니다. 엉뚱함에도 이유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