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집 5

당신을 찾아서 창비시선438. 정호승 시집. 창작과 비평 간행 5

시인의 시집, 5부는 인생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의 시로 가득합니다. 2023년 기준으로 아직 젊은 시인의 시들이 시인보다 훨씬(?) 젊은 저에게 오히려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시집을 낼 정도의 시를 쓰고 모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은 젊은 시인이시니 다음에도 시집을 내시면 좋겠습니다. 그때 여전히 아마도 저는 시인의 시를 보며 감정이입 될 것이 확실합니다. 시집의 끝자락이 아쉽습니다. 이제는 아마도 서해의 갯벌을 보면서 아쉬움이라는 시어를 기억할 듯합니다. 썰물 썰물은 도대체 인간이 싫었다 밤마다 꺼지지 않는 등댓불도 만선의 꿈을 안고 수평선 너머로 기어이 나아가는 인간의 고깃배도 싫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 멀리 바다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

매일 에세이 2023.12.20

당신을 찾아서 창비시선438. 정호승 시집. 창작과 비평 간행 4

나이는 잘 먹어야 합니다. 그악스러웠던 젊음이 있었다면 노년은 숨을 죽여야 합니다. 억척스러웠던 과거를 잊을 수는 없지만 재현하지 않는 노년이면 좋겠습니다. 건강을 상해 산을 다녔지만 조금 건강을 회복했더니, 백대 명산을 다 오르겠다는 욕심을 부리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욕심은 건강을 지불합니다. 욕심이 많을수록 건강을 상하는 것은 당연한 응보입니다. 패기가 젊음의 훈장이라면 관조가 늙은이의 지갑에서 나와야 합니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는 계율을 지켜야 모세오경을 읽지 않아도 늙은이가 도를 깨칠 수 있습니다. 시인의 시를 보며 따라 배우고 싶었습니다. 상처 내가 청년이었을 때 산길을 가다가 유난히 가슴이 움푹 팬 바위를 보고 바위에도 깊은 상처가 있구나 스스로 내 상처를 위로받으며 힘차게 산을 올..

매일 에세이 2023.12.20

당신을 찾아서 창비시선438. 정호승 시집. 창작과 비평 간행 3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의 경험입니다. 해운대 백사장과 동해와 남해가 만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멍하니 바다를 볼 때가 잦았습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익숙해지니 바다 가운데에서 하얗게 파도가 치면서 생긴 포말이 보였습니다. 저를 찾아오는 분들이 있으면 동해의 고래가 저기 있다고, 저기서 숨을 쉬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깜빡 속았습니다. 그냥 바다인데 파도가 부딪칠 곳이 아닌데도 생긴 포말에 속은 것입니다.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위가 숨어 있어서 그랬던 것인데 사람들은 제 거짓말에 속았습니다. 바다는 어떤 때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다가 순간 감정을 바꿉니다. 그 바다를 지켜보았던 그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고래가 다니던 해운대의 앞바다는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시인은 고래라는 말속에 어머니를..

매일 에세이 2023.12.19

당신을 찾아서 창비시선438. 정호승 시집. 창작과 비평 간행 2

‘서울은 만원이다’ ‘서울은 돈만 있으면 천국이다’ 청년시절 늘 듣던 서울의 얼굴이었습니다. 서울의 달을 이고 가난하게 살았던 마을은 이제 거의 모두 아파트 단지로 변했습니다. 출근길 신문을 사려고 돌아서는 순간, 성수역을 향하는 군중에 부딪혀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는 길을 거스른 저를 향한 비난의 눈을 잊지 못합니다. 그 눈빛에 튕겨 저는 서울에서 젊은 시절 짧게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조선시대 한양이니 구경할 거리도 많았을 텐데 그때는 광화문도 창덕궁도 덕수궁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항상 유심히 보았던 것이 있었으니 서울역을 나오면 보이던 숭례문입니다. 서울역에 처음 온 날 자연스럽게 고개가 젖혀졌던 고층건물과 함께 도로에 갇힌 남대문을 처음 보았습니다. 숭례문이라는 고상한..

매일 에세이 2023.12.18

당신을 찾아서 창비시선438. 정호승 시집. 창작과 비평 간행 1

정호승 시인은 나이가 70이 넘은 시인이십니다. 지난번 읽은 이상국 시인의 시에 감탄하여 시집을 고르다 연세가 있는 분이라 빌렸습니다. 서정시를 쓰는 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고래고래 핏대를 세우며 태극기를 앞세워 줄을 세우는 노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시를 읽는다면 좋겠다는 허망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혼자서만 살 수 없습니다. 내 의견에 곰팡이가 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기쁜 일도 있지만 슬픈 일도 있고, 그렇다면 동시에 슬프고 기쁜 일도 왜 없겠습니까? 시인의 “슬프고 기쁜” 일은 무엇인지 들여다보았습니다. 슬프고 기쁜 꽃이 저 혼자 일찍 피었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다 꽃이 저 먼저 져버렸다고 봄날이 아주 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저 혼자 걸어간다고 새로..

매일 에세이 2023.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