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 시집 2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신동호 시집. 창비시선478 2

구만리, 겨울새 구만리의 집들은 지붕이 낮다. 눈이 내리면 어깨까지 굽어서 더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그만 작은 산봉우리가 될 것처럼, 부끄러운 듯 눈 아래 가만히 세속을 감춘다. 새 한마리가 가끔 손님으로 찾아와 작은 흔적을 남기며 처마 밑에 머문다. (겨울새 중에서) 금곡동 공창부락의 지붕도 낮았습니다. 기와를 얹은 경우가 아니면 격년에 한번 초가지붕을 새로 엮었습니다. 어른들이 힘을 모아 같이 작업을 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튼실한 어른이 살았던 집이나 그랬겠지요. 어른 없는 집은 행여 비 샐까 맘이 까맣게 타 들어가듯 초가지붕도 까매졌습니다. 어린아이들의 키가 크지 않았지만 여름 저녁에 후라쉬 하나 들고 굴뚝새를 잡으러 돌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초가지붕이 낡은 집 처마에는 굴뚝새가 집을..

매일 에세이 2024.01.09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신동호 시집. 창비시선478 1

이번 시집은 신동호 시인의 시집입니다. 처음 듣고 보는 시인이라 책을 고를 때 그가 1965년생이라는 것만 보고 골랐습니다. 동시대를 산 사람들끼리 말이 통하리라 생각해서 그랬습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그는 유독 장소와 관련한 시를 많이 쓴 듯합니다. 우선 시인의 시를 해설한 문학평론가 오연경의 설명을 보겠습니다. “신동호 시인은 끝없이 갈라지는 길 위에 서 있다. 그 길은 과거로부터 뻗어왔지만 늘 새롭게 시작되고, 분명 하나의 길을 걸어온 것 같은데 여러 갈래의 길을 지나왔으며, 혼자 고독했지만 여럿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시인은 길에서 배웠고 길에서 사랑했고 길을 살았다.” 고향 화천, 아득한 눈길 설날, 춘천에서 화천 큰댁으로 가는 길. 지금은 삼십분 찻길이지만 예전엔 한시간 반, 겨울 눈길엔 두시..

매일 에세이 2024.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