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456 4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이상국 시집. 창비시선 456 (6)

무제시초(1) 시는 도처에 있다는 말을 합니다. 시인이라서 그런가 보다 관념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이상국 시인의 시 한 편을 읽다가 그만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의 일상이라서 시라고 한 것일 수도 있고, 아름다움을 상실한 세상이 슬픔임을 알아서 한 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상의 소소한 생활, 무언가 부조리한 듯한 세상사가 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저도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시를 소개합니다. 제목은 무제시초(無題詩抄)입니다. 짙은 글자체가 시입니다. 그렇지 않은 글자체는 제 감상이고요. 시를 감상하시는데 방해가 될지 모르지만 제 감흥이 절로 따라가니 글모양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길 가다가 시 한행을 주웠다...

매일 에세이 2023.11.23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이상국 시집. 창비시선 456 (3)

부산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온 첫 해 겨울, 눈이 펑펑 오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도시라서 눈 내리는 걸 본 강아지가 뛰어다니는 건 보지 못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강아지처럼 좋아라 했습니다. 당시 맥없던 저는 괜히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 한 듯한 착각을 잠시 했습니다. 눈 내리는 게 제 능력과 하등 관계가 없는 것임에도 그런 생각을 해서 스스로 무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인의 고향이 아마도 진포인가 봅니다. 그곳에 내리는 눈을 보며 시인이 쓴 시가 좋습니다. 왜 좋은 지 그런 건 묻지 마십시오. 그저 좋습니다. 소개합니다. 겨울 아야진 (박용래 운으로) 진포(津浦) 가에 내리는 눈은 버려진 그물 위에 내리고 횟집 간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진포 가에 내리는 눈은 어판장..

매일 에세이 2023.11.21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이상국 시집. 창비시선 456 (2)

중로상봉(中路相逢)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고민을 하는 여자를 보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사는 곳이 부산이라 서울에 사는 여자는 먼 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데이트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미국에 사는 남자라면 어떻게 하시려고? 괜찮아요’ 응원을 했습니다. 실제 그 여자는 중간쯤인 대전에서 만나면 된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사는 중간 지점 어디쯤에서 만나는 풍습이 있다는 것을 시인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소개합니다. 아름다운 풍속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네 먼 조상의 풍속 중에 반보기라는 게 있었다. 멀리 출가한 딸이나 친정붙이 혹은 동기간끼리 좋은 옷을 차려입고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명절이나 농한기에 날을 잡아 풍광 좋은 곳에서 하루 유정하게 놀다가 ..

매일 에세이 2023.11.20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이상국 시집. 창비시선 456 (1)

과문하여 시인 중 나이 드신 분들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문단이라고 빨리 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자주 소개되는 분들도 역시 젊은 시인들이 대다수라서 그리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동갑내기 시인은 늙어 추한 모습을 보인 대가라고 여겼던 시인과 싸우느라 시가 숫돌에 갈려 날이 시퍼렇게 서서는 불의를 보면 깍둑썰기를 했습니다. 늙은 시인은 무기가 필요해 시를 쓰는 줄 알았습니다. 지지 말라고 응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이 들면 작품 활동이 뜸해지리라고 짐작한 것도 잘못임을 알았습니다. 이상국 시인의 시집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을 서가에서 뽑은 행운이 올 줄 몰랐습니다. 우선 십 수년의 세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시어가 편안합니다. 시어를 읽자..

매일 에세이 2023.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