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 3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시집. 이미출판사 간행

“서울에도 매미가 살아요” 시집의 발문을 쓴 시골 섬진강 가에 사는 시인 김용택이 놀랐답니다. “아스팔트 사이사이 겨울나무 헐벗은 가지 위에 휘영청 쏟아질 듯 집을 짓는” 새를 보고 놀랐던 모양입니다. “부우연 서울 하늘 무색타 까맣게 집을 짓는” 새가 시골도 아닌 서울에 삽니다. 모두가 싫다며 진저리 치는 서울, “거기 이렇게 당당하게 최영미”가 있음을 김용택 시인은 확인합니다. “응큼 떨지 않는 서울내기 시인”으로 소개된 최영미 시인의 시는 솔직합니다. 그 솔직함의 연유를 거슬러가면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이며 사회에 대한 솔직한 자기 발언”이며 최 시인의 “좌충우돌의 사투가 한 편의 시에서 응큼 떠는 우리들의 정곡을 찌른다”라고 김 시인은 소개합니다.  시인과 작품에 대한 소개에서 정직함으로 가슴을..

매일 에세이 2025.02.13

시 따라 걷는 생각2

시 따라 걷는 생각2 시(詩) 최영미 시인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전 남방 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원권 한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퇴근길의 뻑적지근한 매연 가루, 기름칠한 피로 새벽 1시 병원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시 반지하 연립의 스탠드 켠 한숨처럼 하늘로 오르지도 땅으로 꺼지지도 못해 그래서 더 아찔하게 버티고 서 있는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 절간 뒷간의 면벽한 허무가 아니라 지하철 광고의 한 문장으로 똑떨어지는 고독이 아 니라 사람 사는 밑구녁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들 끌어안고..

매일 에세이 2021.12.23

시 따라 걷는 생각1

시 따라 걷는 생각 1 선운사에서 최영미 시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꽃이 어디 선운사에서만 피고 지겠습니까. 마음 허전하면 찾아갈 곳이 어디 선운사만 있겠습니까. 하필이면 꽃이 지는 계절,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사람을 얻을 때,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 잊지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씨앗에 숨긴 꽃을 피우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싹이 나면서 들이차는 빗물에 쓸리면서도 약한 뿌리로 버티던 세월 동안의 추억이 알알이 새겨져..

매일 에세이 2021.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