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민 시집 6

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6

로드 킬이라는 말을 아시죠? 우리 편하자고 만든 길에서 빨리 가자고 타는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을 가리켜하는 말입니다. ‘길에서 살해당한 동물’ 젊은 시절 고향 친구는 일찍 학교를 그만두고 이일 저일 하며 가난한 집안을 받쳤습니다. 여기저기 전전하다 트럭운전을 배웠고 추석이나 설 명절에는 고향에 잠깐 들러 지난 명절 이후 벌어진 자신의 무용담을 소주 한 잔을 걸치며 펼칩니다. 그 친구가 한두 번 오지 않더니 간 만에 왔고 그는 교도소에 갔다 왔다고 고백했습니다. 부산 남산동 고갯길을 내려가다 사람을 치었는데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자기는 다행으로 친사람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한때 탕 뛰기 화물차 운전자들은 교통사고 발생 시 피해자가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말을 하며 서로를 가르친 적이 있습니..

매일 에세이 2024.02.12

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5

사람이 죽었습니다. 한두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했는데, 하늘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많은 우주가 죽었습니다. 현장을 수습하며 브리핑을 하던 소방책임자의 손이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숱한 사고 현장을 수습하던 그 조차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전율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죽은 자의 이름을 봉인하고 얼굴을 가린 채 사라진 우주를 추모하겠다고 합니다. 분명 정부 지침 어딘가에 있을 근조 리본은 사실을 뒤집듯 공무원들의 가슴에 뒤집혀 달렸습니다. 근조는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가치를 정권의 안정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생각하거나, 최소한 어떤 무모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지키려던 그 가치는 무엇일까요? 국력을 채우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함부로 얘기..

매일 에세이 2024.02.12

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4

당신은 저 사람들 안에서 당신을 볼 수 있습니까? 시인은 타인 안에서 자신을 봄으로써 타자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108쪽) 그래서 그는 타인의 삶과 죽음을 시의 소재로 삼았나 봅니다. 그런데 ‘타자(타인)’는 ‘나’에게 낯선 것, 이질적인 것입니다. 세계에는 그런 것이 지천입니다.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패키지 상품”(번지점프)에 현혹된 것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산으로 가는 밭’에서도 그렇듯 우리의 부모님이고 지인입니다.(109쪽) 그런데 타자 안에서 자신을 본다는 것이 말만큼 쉽지만 않습니다. 편이 갈렸는데, 사회적 지위가 다른데, 먹고 사는 데 차이가 있는데, 정치적 소신이 다른데 어찌 그런 사람에게서 자신을 볼 수 있겠습니까? 아니 어떨 땐 타인 안의 자신을..

매일 에세이 2024.02.06

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3

허 씨 노인에 이은 심만평(75세) 씨 소식 농사를 돈을 보고 짓냐? 그렇게 얘기하며 꼭두새벽에 밭으로 가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을 보는 부모 마음이 그렇게 보기 좋다면서요? 그래서 자식들이 “그것 몇 푼 된다고 고생을 하십니까? 제가 버는 돈으로 쌀은 먹을 만큼은 되니 이제 그만 농사지으세요.” 자식의 타박 정도야 참을 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추수 때면 바리바리 자식에게 보내는 아내의 손길에 자꾸 눈이 갔습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허리 굽혀 밭만 보던 농부도 돈 계산쯤은 해야 사람대접받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돈이 되지 않는 밭은 해고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가 봅니다. 밭이 해고되다 쌀 이십 키로가 손자들 피자 네판 값..

매일 에세이 2024.02.06

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2

쓰러진 붉은 돌멩이 한알 6년 전의 기억입니다. 냉장창고 가득히 수확한 사과를 보관하여 내년 재미라도 보려고 했던 농부는 너도나도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로 인해 오히려 사과금이 내리는 불상사를 겪었습니다. 무주 만의 사정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봉화 만 평이나 되는 사과밭을 일구던 농부는 땅을 팔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젠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푸념이 일상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도 무주와 봉화의 농부는 계속 사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땅을 판 사과밭 주인 허 씨 노인의 근황이 알려졌습니다. 시인을 통해서 알려온 소식은 이러합니다. 쓰러진 붉은 돌멩이 한 알 밭 앞으로 도로가 뚫리자 땅값이 평당 삼십만원으로 뛰었다. 삽시간에 이십오년생 사과나무 수백그루가 베어지고 꿈틀거리며..

매일 에세이 2024.02.05

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1

산으로 가는 밭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슬픔을 말리다’는 대지적인 존재로서 흙에 매인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고 합니다. 시인의 관심이 이러할 진 대 이 시집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가끔씩 다니는 무주는 산골입니다. 무주읍에서 30분가량을 차로 가면 거창과 김천에 접한 무풍면이 나옵니다. 행정구역은 전라북도이지만 억양은 경상도 냄새가 짙습니다. 전라도 단어와 경상도 억양이 서로에게 무던한 산골입니다. 1290미터의 대덕산이 허리를 타고 해발 500미터가 조금 넘는 금평마을로 굽이친 곳에는 사과밭이 가득합니다. 지금은 공투라고 불리는 포클레인이 사과를 지탱할 쇠막대를 박습니다. 돈이 없다고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작업차량이 없으면 손도 대기 힘듭니다. 포클레인 한 삽을 뜨면 붉은 흙..

매일 에세이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