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저 사람들 안에서 당신을 볼 수 있습니까? 시인은 타인 안에서 자신을 봄으로써 타자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108쪽) 그래서 그는 타인의 삶과 죽음을 시의 소재로 삼았나 봅니다. 그런데 ‘타자(타인)’는 ‘나’에게 낯선 것, 이질적인 것입니다. 세계에는 그런 것이 지천입니다.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패키지 상품”(번지점프)에 현혹된 것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산으로 가는 밭’에서도 그렇듯 우리의 부모님이고 지인입니다.(109쪽) 그런데 타자 안에서 자신을 본다는 것이 말만큼 쉽지만 않습니다. 편이 갈렸는데, 사회적 지위가 다른데, 먹고 사는 데 차이가 있는데, 정치적 소신이 다른데 어찌 그런 사람에게서 자신을 볼 수 있겠습니까? 아니 어떨 땐 타인 안의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