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산문집 3

단어의 집. 안희연 산문집. 한겨레출판 간행 3

시드볼트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다. 시드볼트란 씨앗(seed)을 저장하는 금고(vault)입니다. 기후 변화나 핵전쟁 등 지구 차원의 대재난에 대비해 식물의 멸종을 막고자 마련된 공간입니다. 시드볼트와 유사한 기관으로는 시드뱅크(seed bank)가 있는데, 시드뱅크가 그때그때 필요한 씨앗의 입출고가 가능한 공간이라면 시드볼트는 절대로 열려서는 안 되는 장소입니다. 시인은 우리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시드볼트나 시드뱅크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수십 편의 시가 자신을 관통해 가는 동안에도 굳게 닫힌 자신의 시드볼트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까지도 지키고 싶은 나의, 나의 가장 내밀한 장면들, 쓰기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쓰고 나서도 번번이 후회로 수렴되는” 이야기가 시인의 시..

매일 에세이 2023.07.08

단어의 집. 안희연 산문집. 한겨례출판 간행 2

시인이 들여다봐야 하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세상에서는 특정 직업인에 대한 기대를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KBS 방송수신료 분리 징수와 관련해서 자신은 KBS 방송은 보지 않는다고 하고(그러니 분리 징수 안을 찬성한다는 말이죠?), 어떤 사람은 그 방송국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고, 왜 수신료를 거둬야 하는지 그 방송국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며 냉정하게 말을 합니다. 이 분들은 애초 KBS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종사자들에 대한 기대가 없는 부류의 사람입니다. 방송인이나 기자 프로듀서 작가들이 자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하여 어떤 자부심을 가지든 대중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인정받을 자리에 있으면서 회사원으로 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들의 불행이 심하지 않길 기원..

매일 에세이 2023.07.05

단어의 집. 안희연 산문집. 한겨례출판 간행.

피막에 관한 시인의 글에 대한 딴지걸기 글쓰기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평이라고 책을 읽고 느낌을 적거나 요약을 하는 일은 사실 글쓰기라고 하기에 적절한 단어 사용이 아닐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작의 영역이고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아실 테니까요. 서평을 핑계로 딴지를 거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시인 안희연이 고른 단어를 주제로 쓴 산문을 모은 책입니다. 시인이라고 하면 공연히 주눅이 드는 것이 제 습관이 되었지만 나름 이유가 있는 것이 시 구절이 몸을 휘감고 정수리를 노리며 달려드는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왜 그런 습관이 들었는지 이해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읽는 사람이 전율을 느낄 정도라면 그 시를 창작한 시인..

매일 에세이 2023.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