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3

끝은 끝으로 이어진. 박승민 시집. 창비시선448 5

사람이 죽었습니다. 한두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했는데, 하늘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많은 우주가 죽었습니다. 현장을 수습하며 브리핑을 하던 소방책임자의 손이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숱한 사고 현장을 수습하던 그 조차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전율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죽은 자의 이름을 봉인하고 얼굴을 가린 채 사라진 우주를 추모하겠다고 합니다. 분명 정부 지침 어딘가에 있을 근조 리본은 사실을 뒤집듯 공무원들의 가슴에 뒤집혀 달렸습니다. 근조는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가치를 정권의 안정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생각하거나, 최소한 어떤 무모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지키려던 그 가치는 무엇일까요? 국력을 채우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함부로 얘기..

매일 에세이 2024.02.12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진은영 시집. 문학과지성사 간행

슬픔을 간직한 자를 위한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사랑하는 마음이 오래된 모양입니다. 아니면 너무도 익숙한 거리처럼 오랫동안 본 사람을 사랑하는 걸까요? 그런데 끝에서 갑자기 싸해집니다. 이 청혼 이상합니다.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청혼의 자리에서 축배가 아닌 쓴잔을 모두 마실 것을 작정합니다. 쓴잔에는 투명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슬픔이 담겨있습니다. 마실 수 없는 잔 같은데 그는 기꺼이 마신다고 합니다. 날카로운 유리가 목을 자를 듯 듣기만 해도 고통스럽습니다. 시의 제목은 청혼입니다. 청혼이 이렇게 아픕니다. 이런 결혼을 왜 하려고 할까요? 우리가 절망의 아교로 밤하늘에 ..

매일 에세이 2023.05.28

허구의 삶. 이금이 장편소설. 문학동네 간행.

모지리 어른들의 폭력에 아이들이 죽어나갑니다. 작가의 말에서 인용합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거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아이는 자라서도 외피만 어른일 뿐 내면엔 상처 가득한 아이가 들어 있는 가엾은 존재다.” 이금이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된 동기일 것 같습니다. 부모는 낳고 기른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 아이들이 귀하다고 생각하고요. 귀하다는 것은 소중하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고, 소중하니 잘 키우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을 이어도 아이들을 존중했다는 답은 쉽게 나오지 않네요. 존중하면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주의를 해야 함에도 부모는 쉽게 말로 상처를 주고, 함부로 행동을 합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부모를 이해해서 상처 ..

매일 에세이 202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