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와 안중근(587-592쪽) 1 안태훈(중근의 아버지)이 천주교로 개종한 이후 안중근과 그 일가는 천주교도로 살았고, 천주교도로 죽었다. 그러나 안중근의 순국 당시 한국 천주교는 그의 교도 자격을 부인했다. 안중근에게 종부성사를 베푼 빌렘은 한국 천주교로부터 배척당해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 시기 내내 천주교계는 안중근을 ‘흠’으로 인식했을 뿐 결코 ‘자랑’으로 여기지 않았다. 해방은 안중근과 천주교계의 관계를 역전시켰다. 안중근을 파문한 것이 천주교의 주요한 흠이 되었다. 천주교를 빼고 안중근을 논할 수 없었기에 안중근을 빼고 천주교를 논할 수도 없었다. 1947년 3월 26일, 안중근 유족들의 요청으로 명동성당에서 37주기 추모 연미사가 거행되었다. 이기준 신부가 집전한 이 연미사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