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도둑 맞은 집중력 4.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간행

무주이장 2025. 6. 24. 14:29

도둑론

 

  저자는 디지털 디톡스를 위하여 모든 전자기기를 두고 시골로 은둔을 했습니다. 그러면 도둑맞은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느리게 살면서 집중력이 회복되고 삶의 질이 회복되는 경험을 했습니다만 다시 도시로 귀환하면서 도루묵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은 이제 소셜 미디어를 배제한 채 살 수 없는 노릇입니다. 소셜 미디어들이 우리들의 집중력을 도둑질한다는 말은 사실 법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형법329조 절도죄는 타인의 재물을 소유자의 동의 없이 몰래 가져가는 행위를 처벌합니다. 우리가 동의한 후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한 그들이 우리의 집중력을 가져가는 것을 제어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법으로 규제를 하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타인의 자유를 규제하는 점에서 반대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책에서 소개를 받아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를 봤습니다. 소셜 미디어 회사에서 근무했던 개발자들이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들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알리고 개선방향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는 내용입니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극우들의 집권에 도움을 주는 소셜 미디어들의 역기능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프로그램 설계를 할 때 인간친화적으로 할 수 있음에도 자본주의 기업의 속성인 이익창출과 부딪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문제를 야기하면 시스템을 바꾸면 될 일인데도 문제를 만드는 시스템 내에서 보완을 할 수 있다는 모순이 용납되는 현실을 보면서 저는 다시 한번 세상을 보는 기준을 재조정했습니다. 이익은 명분으로 포장됩니다.

 

 구글은 참여도를 높이는 게 목표입니다. 구글에서 메일을 받게 되면 알람을 울려 계속 구글을 보게 합니다. 참여도가 높다는 말은 곧 집중력을 더 많이 빨아들이고 사람들을 더 많이 방해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트리스탄은 설명합니다. 트리스탄은 사람을 위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서 구글에서 일을 시작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혼란을 겪었던 경험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소수입니다. 구글이 핸드폰을 더 오래 들여다보도록 하는 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그들의 사업모델일 뿐입니다. 단 결과가 사람들의 집중력을 파괴합니다. 악의가 없다면 거기 있으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에 보통 사람들은 도덕적 혼란을 덜 느낄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유인책은 수익입니다. 그들을 변화시킬 유인책이 없다는 것에 트리스탄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실망을 합니다.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해도 반대하고 반발하는 힘이 강합니다. 유인책을 만들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문제는 핸드폰이 아니라 현재 핸드폰이 설계되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인터넷이 아니라 현재 인터넷이 설계되는 방식과 그 방식의 설계자들에게 제공되는 유인책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핸드폰과 노트북, 소셜미디어 계정을 계속 보유하면서 집중력을 훨씬 잘 발휘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들이 다른 종류의 유인책 위에서 설계된다면 말입니다. (200~201)

 

 어떤 기술이, 어떤 목적에서, 누구의 이익을 위해 설계되는가? 이것이 진짜 논쟁이 되어야 한다고 트리스탄은 주장합니다. 기술에 찬성하느냐 아니냐의 논쟁으로 보지 말자는 주장입니다. 오늘 제가 보는 알고리즘은 부정편향(심리학 용어)을 따라 설계되어 있습니다. 분노를 많이 일으킬수록 참여도가 높아집니다.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면 기업들은 그렇게 설계를 할 것이고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