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하바투트 지음. 노승용 옮김. 문학동네 간행

무주이장 2025. 5. 9. 14:51

 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단순하게 산다며 세상일에 관심을 끄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단순한 일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무리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해도 어쩌면 당신의 행동은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당신이 아닌 단순하게 살고 싶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려는 복잡계로 끌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란 고립되어 세상을 무시하고 살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과학과 과학자를 소재로 한 소설을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전기물도 아닌 것이, 과학자의 연구와 삶을 이야기합니다. 프러시안 블루라는 현대적 합성 안료로부터 시안화물이 분리되고 이것이 차클로 A가 되어 캘리포니아 오렌지에 살충제로 사용되고, 차클로 B도 나왔다는 설명을 재미있게 따라가다 차클로 B가 독일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을 집단 살해할 때 사용한 독가스라는 설명에 그만 숨이 잠깐 멈춰졌습니다. 과학의 발견, 발명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하느냐, 그럴 필요가 없느냐는 오래된 질문에 도달합니다. 구아노와 초석 인골등 천연질소비료를 대체한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의 연구는 실제 화약과 폭약을 제조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질소비료로도 사용된다는 설명에 이르면 질문과 함께 답을 찾는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오늘도 과학적 성공은 등불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밝은 빛을 던져줍니다. 우주에 대한 이해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수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또 다른 언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엉뚱하고 별 쓸모가 없을 줄 알았던 수학자들의 존재에 놀랐습니다. 물리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설명할 때 장광설을 늘어놓지 않고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할 때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적 성공의 등불에도 그늘이 있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과학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대량살상무기의 지적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저자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려 이 책을 썼을 법합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세상을 좋게도 나쁘게도 바꾸는 과학과 과학자를 소개하면서 과학과 무관함이 면책특권이 아님을 질책하는 것 같습니다. 염소가스와 질소비료를 동시에 만든 프리치 하버를 아는 것은 아마도 의무로 변할 것 같습니다. 저자는 레몬나무가 어떻게 죽는지 알려줍니다. 늙은 나무는 만일 벌목되지 않거나 가뭄, 질병, 무수한 해충, 균류, 역병의 공격에서 살아남으면 열매를 너무 많이 맺는 바람에 쓰러진다고 합니다. 일생의 끝에 이른 나무에서는 마지막으로 무수한 레몬이 달리고 열매가 한꺼번에 익고 초과 중량 때문에 모든 가지가 부러져 몇 주 뒤에는 썩어가는 레몬이 땅을 뒤덮습니다. 죽음을 앞둔 풍요는 야릇한 풍경입니다. 소나무가 살기 고달파지면 무수한 솔방울을 맺는 것도 같은 이치일 듯합니다.

 

 레몬나무의 이런 과숙의 과시는 식물보다는 인류의 마구잡이식 파괴적 성장과 더 가까워 보인다며 내 레몬나무를 얼마나 살려두어야겠느냐고 작가는 묻습니다. 나무에 정통한 밤의 정원사는 나무를 베어서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알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이지 누가 그러고 싶겠는가? 반문을 하면서 작가의 이야기는 끝납니다.

 

 결국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우리들의 레몬나무를 과숙하지 않고 병들지 않게 키우는 방법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누구도 레몬나무를 베길 원치 않기에 관심을 가지고 나무를 키워야 합니다. “밤은 정원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식물이 잠을 자느라 감각이 무뎌지거든요. 다른 곳으로 옮겨도 마치 마취된 환자처럼 고통을 덜 느끼죠. 식물을 대할 때는 세심해야 합니다.” ‘밤의 정원사의 팁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밤의 정원사처럼 세심하진 못합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어찌나 뛰며 놀랐는지 감각이 예민해졌습니다. 그의 설명을 채 이해하지 못해도 그랬습니다.

 

 벵하민 라바투트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나서 헤이그에서 자라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페루 리마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는 현재 칠레 산티아고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문화를 살았던 작가를 이해하는 것도 멈출 수 없을 듯합니다.

내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