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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위기.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다산초당 간행

책의 제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서사, 즉 이야기란 무엇인가? 서사는 스토리와는 무엇이 다른가? 스토리텔링은 이야기하기와 무엇이 다른가? 정보와 이야기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스마트한 지배에 예속되어 억압도, 저항도 없이 삶을 게시하고 공유하고 좋아하도록 지배당한다고 하면서 새롭고 자극적인 뉴스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이슈에서 이슈로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 스스로 자기 존재를 정보로 전락시키는 사회에서 개인은 각자의 이야기, 즉 서사를 잃고 우연성에 휩싸인 채 폭풍우 한가운데서 부유한다며 저자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정보 과잉 사회는 스토리텔링을 외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전시하듯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찰나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공유하고 공감 버튼을 누르지만 그 안에 의미는 없다며 이는 사라..

매일 에세이 2024.05.08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노부토모 나오코(信友直子). 최윤영. 시공사 2

딸의 치매 간병 경험: 간병은 부모가 목숨 걸고 해주는 마지막 육아다.    어머니의 병을 확인한 딸은 나이 드신 아버지에게만 간병을 의존하는 것에 도덕적 부담감을 느낍니다. 국가의 보호를 요청하는 제도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강하게 거부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본인에게 우울증이 오는 것을 인식합니다. 작가가 어떻게 어머니의 치매에 어떤 도움을 받아 대처했는지를 알려줍니다.   치매환자에게는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남에게 병을 알리는 것을 싫어하는 어머니와 귀가 들리지 않아 어머니의 요청에 즉시 대응 못 하는 아버지에 실망하여 대화가 끊어진 집에서는 치매의 진행이 빨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데이케어센터에 나가거나,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매일 에세이 2024.05.06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노부토모 나오코(信友直子). 최윤영. 시공사 1

다큐멘터리 영상작가가 알려주는 치매 증세    가족 중 치매로 고통을 받는 분들의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기에 적당한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옛말에 병은 알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적당한 치료법을 찾거나 적어도 간병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저도 어머니의 치매를 뒤늦게 알아 당황하고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병을 일찍 알았더라면 혼란도 줄고 대처가 조금은 수월했을지도 모릅니다. 확진이 되기 전 몇 년 동안의 어머니는 제가 알던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변하기라도 하면 병을 의심이라도 하였겠지만 변화는 조금씩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이상해진 어머니와 다툼도 많았습니다. 욕심덩어리로 변한 어머니를 무시하고 대화를 ..

매일 에세이 2024.05.06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원자에서 인간까지. 김상욱 지음. 바다출판사 간행

지구가 45억 년 전 어떻게 만들어졌고 대기와 지질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오 마이 사이언스”라고 저도 외쳤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과거 흔적을 통하여 45억 년 전의 지구 상황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이야기해 주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에 몰입되었습니다.    달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면서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졌다는 말에는 단순함의 극치를 느꼈습니다. 무엇인가 때렸으니 기울어진 것이다는 설명의 단출함은 명징했습니다. 지구에서 뜯겨 나온 달이 지구 가까이 자리 잡은 것도 이해되었습니다.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다 보면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던 분이 이 책의 저자입니다(이 분이 출연한 프로그램의 제목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양자역학을 연구하신 과학자라는 것..

매일 에세이 2024.04.27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김현아 지음. 창비 간행

책의 제목부터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가슴속에서 뛰던 심장이 조여지며 쿵쿵 불규칙적으로 뛰면서 아픕니다. 옆집의 아이가 아니라, 친척 집의 아이가 아니라, 그토록 귀엽고 예뻐서 사랑받던 딸이 조용히 무너진 것을 확인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슴은 무너집니다.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딸을 보살피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의사 부부의 둘째 딸로 태어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아이가, 부족함이 없을 듯한 아이가 아픈 것을 확인한 어머니는 딸을 돌봅니다. 딸을 돌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뜨겁지만 말과 행동은 냉정합니다. 책을 읽던 중 저의 첫 반응은 아픈 딸을 대하는 어머니가 너무 냉정해 놀랐습니다. 하지만 곧 그렇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뜨거운 가슴보다는 찬 머리를 가져야 조용히..

매일 에세이 2024.04.25

정본 백석시집.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간행 2

그림 같은 시를 소개합니다. 흰밤 넷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초동일(初冬日) 흙담벽에 볕이 따사하니 아이들은 물코를 흘리며 무감자를 먹었다 돌덜구에 천상수가 차게 복숭아나무에 시라리타래가 말러갔다 *무감자: 고구마 *돌덜구: 돌절구 *천상수: 빗물 *시라리타래:시래기를 길게 엮은 타래 하답(夏畓) 짝새가 발뿌리에서 닐은 논두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눞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짝새: 뱁새 *닐은: 일어난의 고어 *눞: 늪의 평안 방언 흰밤은 핼로..

매일 에세이 2024.04.17

정본 백석시집. 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간행 1

우선 ‘정본’이란 말이 제목에 왜 붙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백석은 분단 이후 북쪽에서도 얼마간 작품활동을 했지만, 백석 시의 본령은 그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에 있다고 합니다. (4쪽) 백석 시에서는 방언과 고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모두 표준어로 바꾸면 시의 맛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상적인 것은 원본에서 오자와 탈자, 편집과정에서 일어난 착오만을 고치는 것인데, 그 밖에 백석이 당시 제정된 맞춤법 규정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아 일어난 표기의 혼란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백석 시의 원본에서 방언과 고어는 살리고 맞춤법 규정에 위배된 표기와 오 ∙ 탈자를 바로잡은 ‘정본’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시집에 ‘정본’을 붙인 이유입니다. (4~5쪽) 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

매일 에세이 2024.04.16

말 잘하는 방법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사회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동물들도 의사소통을 합니다. 개가 기억하는 단어가 1,000개가 된다고 하지요. 1,000개의 단어를 사용하여 소통하는 개를 상상하시면 귀엽고 믿음직스럽고 때로는 무서운 개 한 마리가 보이지 않습니까? 말은 존재의 의미라고 믿습니다. 글을 쓰는 방법과 말을 잘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몰아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읽었다고 글을 잘 쓰거나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저를 통하여 증명되었습니다. 마치 유튜브에 올려진 그 많은 테니스 레슨 영상을 숱하게 보지만 결국 아직도 초보 실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조그만 팁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어 말..

매일 에세이 2024.04.15

세네카의 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메이트북스 간행

고대 로마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의 말을 번역한 책입니다. 부제는 ‘주체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한 철학 에세이’라고 적었습니다. 세네카는 BC4년부터 65년까지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살았던 까마득한 과거 로마시대에 했던 말을 2024년 읽는 소감이 특별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지금을 사는 지혜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에 철학이든 인문학이든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크게 변한 게 없다는 생각에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던 몇몇 동창이나 선배들은 그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검색하면 올바른 이성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사람의 유일한 선은 덕을 행하는 데 있다고 설명합니다. 책은 초지일관 스토아주..

매일 에세이 2024.04.12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장편소설. 문학동네

1956년부터 1962년 일곱 해를 살았던 시인 백석(백기행)을 작가 김연수는 소설로써 기억합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집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두리번거리며 당황하게 됩니다. 백석이 시를 쓴 마지막 기간이 1956년부터 1962년이었다고 합니다. 일곱 해의 마지막, 1962년에서 김연수의 이야기가 끝나는 이유입니다(백석은 1996년 사망했다고 합니다). 백석은 1912년 태어났고, 1996년 북한에서 죽은 시인입니다. 동족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던 전쟁통, 낙동강 전선까지 참전하여 인민군 종군기자로서 기사를 썼던 백석은 전쟁 후, 이념의 칼날이 사람을 난도질하는 북녘에서 시인으로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를 기억하며 작가 김연수는 ‘일곱 해의 마지막’을 기억..

매일 에세이 20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