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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집. 리브 앤더슨 지음. 최유솔 옮김. 그늘 간행

정유정의 종의 기원에서 새로운 인간종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낳고 기른 엄마와 엄마의 자매, 함께 자란 형을 살해하면서도 마음의 동요가 없는 전에 본 적이 없는 인간종의 출현을 작가는 흥미진진하게 풀어냈습니다. 읽으면서 불편한 느낌은 오히려 독자의 몫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한 작가는 당초 계획했던 이야기를 세 번에 걸쳐 고쳐서 완성했다고 하니 그도 또한 많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불편하지만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패륜입니다. 비속과 존속 살해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는 어떨까요?  어머니가 자식을 학대하고 딸을 죽인 살인자를 확인하기 위하여 또 다른 자식을 미끼로 쓴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친딸이 납치된 후 살해되었고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엄마는 결국 딸도 찾지 못하고, 아마도 딸을 죽였을 살..

매일 에세이 2024.08.01

인계철선.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 오픈하우스 간행

더운 여름입니다.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모처럼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숙소가 있던 산방산 근처 펜션은 습기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자 제습기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방은 제습의 열기로 뜨끈했고요. 제주도의 어디를 가야 더위를 피하고 휴가를 즐길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작년 여름 세계 잼버리 대회 참가자들이 고생을 하고 있을 때 저는 친구와 함께 여름휴가를 전라북도로 갔습니다. 전북에는 둘러볼 데가 많아 조그만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지역의 멋과 맛을 즐길 계획이었습니다. 불볕더위를 고려하지 못했던 우리는 차에서 내려 거리로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걷고 보는 것은 포기하고 점심과 저녁을 먹을 곳, 숙소가 있는 곳을 포인터로 정하고 이동 거리에 맞춰 드라이브만 했습니다. 에어컨 없는 곳은 갈 수 없었습..

매일 에세이 2024.07.31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레이먼드 카버 지음. 손성경 옮김. 문학동네 간행

제가 좋아하는 운동은 테니스입니다. 공을 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행히 저의 아파트에는 코트가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8시경, 코트에 나가면 아무도 없습니다. 박스볼을 치고 땀을 내는 일상을 매우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도 없는 넓은 코트를 혼자 차지하고 있으면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사람이 없으니 문제가 생길 일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람과 사람이 엮이면서 만들어집니다. 공에만 집중하는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고 집중의 시간이며 무념무상의 시간입니다.   운동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 모이면 동호회가 됩니다. 테니스에도 동호회가 있습니다. 복식을 위주로 경기를 하니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테니스를 치려는 공동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이해관계가 생길 틈이 별로 없고..

매일 에세이 2024.07.25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소연 지음. 돌고래 간행

1년이 지나면 큰아이가 버리는 옷이 큰 비닐로 한 자루나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옷이 거의 매일 택배로 배달되었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아르바이트 뛰고 노임을 받은 날 뒤, 월급을 타기 시작한 후로는 월급을 받은 날 후 거의 일주일 동안은 늘 택배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월급이 많지도 않은데 저렇게 많은 옷을 어떻게 사서 입을까 궁금했습니다. 비법은 가격이었습니다. 아이의 옷은 가격대가 비싸야 3~4만 원 정도이고 대부분은 만 원을 넘기지 않는 저렴한 가격이었습니다.    아내도 아이의 소비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비싸도 오래 입을 옷을 사라는 주문을 하면 아이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옷을 사주겠다고 해도 따라나서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취향에 맞는 옷을 사기보다는 자기 마음대로..

매일 에세이 2024.07.22

대성당(CATHEDRAL).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문학동네 간행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을 계속해서 읽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지루한 듯 지루하지 않고 세상 여기저기에서 늘 일어나는 흔한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그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여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검색해 보기도 합니다. 소설책이 따로 정답지를 책 뒤에 준비한 수련장이 아니기에 사람들의 의견은 미묘하게 다릅니다. 세상사라는 것이 사람들이 얽혀서 만들어지니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소설 읽기를 권합니다.   요즈음이야 성형수술이 워낙 발달해서 어머님 날 낳으시고 선생님 날 고치시니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 부담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태어나서 성형이 가능한 나이가 될 때까지 곁에 두고 늘 봐야 하는 아이가 기왕이면 예쁘면 좋..

매일 에세이 2024.07.18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드 카버지음. 장영문 옮김. 문학동네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할까요? 나이를 제법 먹었는데도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하려나보다 착각했습니다. 멋을 잔뜩 부려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가던 옆집 이모 뒷모습을 보며 예쁘다고 감탄했던 마음도 어떻게 보면 사랑이고, 사춘기 통학길에 만났던 마음에 든 여학생에게 포장도 하지 않은 책을 선물하겠다며 호기를 부렸던 마음도 사랑입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거절을 하던 여학생 앞에서 갑자기 달려든 부끄러움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도 사랑의 다른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한 사랑, 혼자 한 사랑, 즐거웠던 사랑, 부끄러운 사랑 등, 갑자기 책 제목에 많은 생각이 책을 펼치기 전에 벌써 쏟아졌습니다. 사랑, 말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거 좀 이상합니다. 즐거운 추억이 가득할 ..

매일 에세이 2024.07.14

물질의 세계.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인플루엔셜 간행

45억 년 전 지구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시작된 지구의 역사를 배우며 상식을 늘려왔습니다. 푸른 별이라 불리는 지구에서 우리는 여러 학문을 만들었습니다. 학문은 체계가 있습니다. 저는 학문에 대한 근본이 없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책을 직접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평소 갖고 있던 궁금증은 무의식 어딘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책을 소개할 때 벌떡 일어난 궁금증은 의식의 세계로 뛰어듭니다. 재미있게 읽기는 하지만 정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관심을 가지고 듣게 되고, 나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은 덕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책이 책을 소개한다고 합니다. 난수표 같았던 원소주기율표를 조금 이해하고는 세상의 물질에 ..

매일 에세이 2024.07.10

문명의 충돌. 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김영사

새뮤얼 헌팅턴의 약력을 확인하던 중 그가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1977~1978)을 지냈다는 정보를 보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카터 행정부에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안보담당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입니다.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읽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의 감상은 한마디로 ‘기분이 더럽다’였습니다. 세계를 하나의 큰 체스판으로 보고 국제적 역학관계와 미국의 전략을 소개하는 책으로 기억합니다. 미국의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사람의 책이니 미국이 세계를 보는 시선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읽었는데 일방적인 그들의 생각에 체스판의 졸이 된 우리나라를 보는 현실이 싫었습니다.    40여 년간 지속된 냉전 체제가 ..

매일 에세이 2024.07.07

신도 주사위 놀이를 한다. 이언 스튜어트 지음. 장영재 옮김. 북라이프 출간

대중을 위한 과학서의 매력에 빠져 제 능력도 잊은 채 구입한 책입니다. 부제가 ‘확률,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해 온 수학의 역사’입니다. 과거 재미있다는 말에 끌려 수학에 관한 책을 샀다가 책을 끝까지 넘겨보지도 못 한 경험이 있었건만… 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래도 책장은 끝까지 넘겼습니다. 앞부분과 책의 뒷부분에서 제가 넘긴 책의 요지가 있었습니다. 이 책을 저처럼 분별없이 고른 분들에게 권할 수 있는 말은 1장과 18장을 읽으시고 특별히 이해가 되고 관심이 가는 장을 골라서 세부내용을 읽으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해를 못 한 책을 권하는 것은 여러분의 독서 생활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말이지만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이 이해 못 하거나 예측 못 하는 일들에 대하여 예측과 확신..

매일 에세이 2024.06.26

시사in 875호 당원권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전혜원 기자

한국 정치의 역동성이 대단하다는 말을 합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예상하기가 힘들다는 말도 자주 듣습니다. 정치학은 사회과학의 영역입니다. 기본적으로 정치가 학문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현실 정치를 해석하는 수단으로써 효능이 있어야 합니다. 어중이떠중이 전문가들이 종편과 공중파의 방송을 허비하는 시절이 계속되었습니다. 웬만한 그들 주장은 시사인을 읽는 독자라면, 정치에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올바른 정보를 찾는 방법을 조금만 안다면 중언부언이요 시간 낭비라는 것을 압니다. 그들이 행여나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며 큰소리나 치지는 않는지 걱정이 됩니다. 자기의 지식이 금과옥조나 되는 듯 강요하는 선생을 만나는 불행이 계속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세상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학위..

매일 에세이 202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