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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장편소설. 문학동네 간행

한때 소설 읽기를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고인이 되신 이외수 작가의 ‘꿈꾸는 식물’을 읽은 후로 기억합니다. 사창가의 포주인 형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그와 갈등하는 동생은 식물로 상징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형이 만든 우리를 태우며 탈출하는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완전범죄에 가까운 방화를 꿈꾸고 실행합니다.   문학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깨어졌습니다. 세상을 통찰하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소설가는 세상을 개혁하는 요령을 깨치고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젊은 시절 약육강식 먹이사슬로 합리화되던 세상은 사실은 협잡과 사기와 공갈 폭력이 난무하는 부조리일 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은 무기력한 현실을 위로하는 진통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 것입니다. 사람..

매일 에세이 2024.10.21

카사노바 호텔. 아니 에르노 지음. 문학동네 간행

글이 작가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일에 무관한 듯 혼자 놀면 글만 화려해질 수 있습니다. 세상일과 떠나 글만 살게 된다면 글은 혼자 잘난 맛에 표현이 화려해질 것입니다.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아름다움이라는 사람들을 일컬어 탐미주의자라고 부릅니다.  헬조선 속에서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사는 세상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작가들이 사는 세상은 같은 세상입니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심미안은 놀랍기는 하지만 부럽지는 않습니다. 심미안을 가진 그들은 세상의 부조리를 보는 정의안(정의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이렇게 부르기로 합시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부조리를 아름다운 문학으로 설명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며 같이 아파하는 문학은 가능할 수 없을까요?  아니 에르노는 특별하게 분칠을 하지 않는 것..

매일 에세이 2024.10.18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김영화 지음. 메멘토 간행

아프가니스탄에 한국 정부가 파병을 시작한 해는 2001년입니다. 2008년 바그람 공군기지에 한국병원과 한국직업훈련원이 만들어졌고요. 2010년 7월에는 군인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의료진을 포함해 140여 명으로 구성된 지방재건팀도 파견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한 국가들은 모두 쓰라린 아픔을 맛봤습니다. 저의 기억에는 아프가니스탄의 공산정권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소련군이 진주하여 곤욕을 치른 후 물러났고, 소련 철군 후 탈레반이 혼란한 정세를 틈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집권하며 이슬람 근본주의를 극단적으로 해석하고 폭압 통치를 정당화했습니다. 이때 이들의 폭력에 전 세계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2001년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탈레반 정권이 보호하고 있다는 핑계로 미국 ..

매일 에세이 2024.10.15

연애의 결말. 김서령 소설집. 제딧 그림. 폴앤니나 간행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 연애는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제목을 보고 빌렸습니다. 조카를 포함해 3명의 젊은이를 둔 아버지와 큰아버지입니다. 먼저 큰아이를 결혼시킬 때는 제가 결혼을 준비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허례와 허식을 최소화하여 결혼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실용적인 태도에 제가 욕을 먹으면서 했던 결혼식이 떠올랐습니다. 그 많은 친지들을 이해시키는 노력이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친지들의 훈수가 사라진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조카와 둘째의 경우 그들의 연애관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저는 결혼을 하고서야 저와 아내의 결정이나 그로 인한 사건 사고가 일상이 된 것을 확인하고 편안했습니다. 결혼은 편한 것이구나 생각하며 일상에서 안전한 사랑을 했습니다. 연애란 것이 ..

매일 에세이 2024.10.14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생각의길 간행

어린 시절, 선생님들이 권했던 위인전기를 읽지 못했습니다.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소년들에게 읽히려는 전기라는 것들이 너무 뻔한 내용이라 쉽게 읽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일 처음 문방구에서 내돈내산 한 책은 안데르센이 지은 동화집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으로 기억합니다. 처음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웠습니다. 그 후 책을 사려는 욕구를 충족 못한 현실의 벽을 허물어 주신 것이 아버지께서 아마도 월부로 구입했을 계몽사에서 만든 50권의 ‘소년소녀세계명작’ 전집이었습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절로 기억합니다. 이후 더욱 위인전은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청년 시절, 꿈도 야망도 없다는 친구들의 비판에 혹 위인전을 읽지 못해 그런 건 아닐까 스스로 의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

매일 에세이 2024.10.14

작별 인사. 김영하 장편소설. 복복서가 간행

닥쳐올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AI기술이 시간을 단축하며 인간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현실을 보며 기대하는 사람들과 걱정하는 사람들로 나뉩니다. 이들 모두 미래를 예측할 때 대체로 공통되는 점은 인간의 편의를 위하여 기계를 사용한다는 것과 나아가 인간의 수명 연장과 건강을 위하여 소모품으로서의 인간을 만드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기계는 인간의 외관과 비슷한 휴머노이드로 개발이 되고, 소모품으로서의 인간은 클론이라고 불리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세포를 이용하여 복제된 인간으로 자신의 세포를 이용해서 만든 클론은 필요시 장기를 적출하는 대상으로 존재하게 되는데 이미 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김영하 작가는 휴머노이드와 클론 그리고 인간이 살았던 시절을 이야기합..

매일 에세이 2024.10.10

원더풀 사이언스. 나탈리 엔지어 지음. 김소정 옮김. 지호 간행 1

책을 읽으면 좋은 것이 생각을 할 거리,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고등학교 때 신문을 읽는 것은 사설을 필사하면서 글씨 연습을 하거나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어지는 논리 있는 글쓰기를 공부할 때였습니다. 치기 어린 개똥철학만 있었지 세상물정을 모르니 신문지 사설을 필사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이야 개똥철학도 냄새가 사라지고 이리 부딪히고 저리 넘어지는 세상살이의 이력이 붙어 몇몇 정보회사의 기사를 보면서 생각이라는 것이 일어나지만 이미 40년 남짓 살아온 회사원의 경험이 있는 나에게 일천한 경험을 가진 그들의 글이란 것이 6하 원칙이란 것도 없고 논리의 대가리 꼬리도 없는 경우가 많아 시간을 내어 잠깐 나에게 일어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그렇지만 책이..

매일 에세이 2024.10.08

요즘 애들(This generation).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RHK 간행.

요즘 애들이라면 어떤 세대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이 책에서는 밀레니얼을 가리킵니다. 옥스퍼드 사전에서 밀레니얼은 1980년대 초반과 19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기회를 상실한 세대로 설명되기도 하고, 현대 미국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로 살 것이 거의 확실 시 되는 불행한 세대라고도 합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망가진 체제를 확인하였고, 일자리가 혹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회사가 오래갈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으며, 많은 사람이 언제든 빚더미의 폭풍에 집어삼켜질 거란 두려움 속에 사는 세대라고 합니다. 광범위한 불안정에 길들여진 세대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을 애초부터 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능력주의와 예외주의를 믿었던 세..

매일 에세이 2024.09.30

노력의 배신. 김영훈 지음. 21세기북스 간행.

‘헬조선’ 유행어가 한참 동안 들렸습니다. ‘흙수저’가 살기에는 지옥 같은 나라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 한때 인풋에 비례해서 아웃풋이 나온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면 제가 희망하던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일단 이 믿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답을 하기로 하고, 헬조선에 살던 젊은이는 ‘노오력’에 대하여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경상도에서 쓰던 말로 “쎄빠지게” 애만 쓰다 지친 이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기왕이면 쓸데없는 ‘노오력’을 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실컷 애만 쓰다 지친 모습이라 안타깝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노력신봉공화국’이라 명명합니다. 모든 길은 노력으로 통하는 나라입니다. 잘못되면 노력이 ..

매일 에세이 2024.09.26

H마트에서 울다. 미셀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간행.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얼굴보고 같이 살면서도 저는 아내의 마음,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지 못했습니다. 소설을 읽고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읽어낸다고 믿었지만, 책은 책이고, 생활은 ‘따로’였습니다. 아내는 지쳤습니다. 간혹 제가 바뀌지 않았냐고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실망스럽습니다. “뭐가 바꼈다는 거야?” 말투도 눈총도 무섭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라고 자격 시험을 치르고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닙니다. 자격 시험을 치렀다고 해서 무어 그리 달라지겠냐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아무 생각도 없이 아이를 낳으면 사랑으로 키울 것이라는 막연한 결심만으로는 육아의 현실은 냉엄합니다. 제가 클 때 부모로부터 매도 맞았습니다. 가난에 찌든 부모가 무슨 마음의 여유..

매일 에세이 202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