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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수수께끼(The Beautiful Mystery). 루이즈 페니 지음. 김예진 옮김

사람 사는 세상은 장소가 다르다고 해서 큰 차이가 있는 게 아닌 가 봅니다. 추리소설에서는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가 세상 여기저기 다양하지만 이야기에서 사람을 빼면 마치 음악이 빠진 영화처럼 재미가 없어집니다. 사람 이야기가 빠진 괴수 영화나 잔인한 영상 중심의 괴기 영화가 재미가 없는 이유도 사람의 숨길이 빠져서 그럴 것입니다. ‘늑대들 속의 성길버트’라는 뜻을 가진 몬트리올 오지에 자리 잡은 성질베르앙트르레루 수도원에는 24명의 수사들이 고립되어 생활합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수수께끼“로 불리는 그레고리아 성가를 부르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성가 전문가로 성가를 녹음하여 세상에 그들의 존재를 알린 마티외 수사가 살해당했습니다. 녹음성가의 성공으로 수도원의 노후시설이..

매일 에세이 2024.03.02

서울의 동쪽. 전우용 글, 이광익 그림. 보림출판사 간행

서울 구경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워낙 큰 도시이니 어디서부터 시작을 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함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울은 조선이 건국되면서 만들어진 도시라는 것을 알면 사대문 안이 보입니다. 내사산을 이은 서울도성, 여기에 외사산으로 확장하면서 사대문 밖의 임금과 왕비의 무덤을 찾으면 서울구경은 사실 끝입니다. 물론 경기도로 이어지면 문화적 유산이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서울에 한정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전우용 선생은 현재의 일상과 연관되고 중첩되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교훈을 쉽게 알려줍니다. 동시대를 살면서 이런 분의 지식이 있어 사는 맛이 납니다. 책을 읽는 재미가 이런 것입니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선생과 시대정신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기쁨이 큽니다. 서울의 동쪽이라는 책을 주문하면서 기대가 컸습..

매일 에세이 2024.02.29

조인계획.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간행

조인이 뭔지 책을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새라는 뜻의 '조'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새처럼 나는 사람을 만드는 계획이 조인계획입니다. 사람이 새처럼 나는 스포츠는 윙슈트도 있고, 패러글라이딩도 있고, 트램펄린, 패러모터도 있네요. 겨울 스포츠로 스키점프도 새처럼 나는 스포츠입니다. 조인계획은 스키점프 선수들의 이야기입니다. 범인은 책의 3분의 1쯤에서 벌써 드러납니다. 그가 왜 범행을 준비했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이후 이야기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일본 스키점프계의 유망주 니레이 아키라가 호텔 마루야마 라일락 식당에서 조제된 비타민을 먹고 미야노모리 스키점프 경기장에서 연습 도중 착지에 실패하여 상처를 입습니다. 이 현장을 니레이의 여자 친구인 스기에 유코가 목격을 하고 신고를 하지만 니레이는 사망하고 맙..

매일 에세이 2024.02.25

식량위기 대한민국. 남재작 지음. 웨일북 간행

작년 5월에 사과꽃들이 한창 필 때 기온이 급히 내려가 심한 냉해를 입었습니다. 꽃이 폈다가 수정도 되기 전에 지면 다시 꽃을 피우는 줄 잘못 알았습니다.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후손을 이을 생각에 죽자 살자 씨를 맺기 위하여 몸살을 앓으면서 다시 힘을 내 꽃을 피우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한 번의 기회는 주지만 그 기회를 잃으면 두 번째 기회는 바로 주지 않습니다. 꽃피는 시절을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가 느긋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시절에 맞추어 민첩하게 움직이지만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상심한 마음을 수습하고 다음을 기다리는 여유를 배웁니다. 한 해 농사를 망치고서도 꿋꿋이 내년을 준비하는 마음이 농부의 마음입니다. 쉽게 뜻을 꺾지 않습니다. 저자는 기후위기를 설파하면서 미..

매일 에세이 2024.02.23

아침은 생각한다. 문태준 시집. 창비시선471. 4

어머니는 늘 개를 키웠습니다. 간혹 공사장에 밥을 해주기도 해서 잔반을 처리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잘 키워 동네 사람들이 찾을 때 내주려는 목적도 있었던 듯합니다. 키우는 개가 자주 바뀌었습니다. 요즘이야 시골이래도 개를 먹는 분들이 많이 줄었으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개 팔자가 상팔자가 된 세월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개를 대충 키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읽은 녀석들은 늘 어머니 곁을 지켰습니다. 사춘기부터 어머니와 자주 다투던 저 때문에 마음이 상한 어머니는 말수 적은 남편에게 하소연 못하고, 냉랭한 관계의 시어머니에게 마음을 열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곁에 머무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따뜻한 개의 체온으로 언 마음을 녹였습니다. 어머니가 개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 유전되었습니..

매일 에세이 2024.02.21

아침은 생각한다. 문태준 시집. 창비시선471. 3

자연과 함께 살기를 바라고 자연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그래서 밭에 쪼그려 앉아 일도 하게 됩니다. 시선이 하늘을 향하기도 하고, 마음이 길을 걷는 행인에게도 가지만 시인은 땅에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듣게 되는 말이 시가 되었습니다. 미련스럽게 지난여름 낮에 풀을 뽑고 있는 내게 지나가던 그 사람이 말했네 -그걸 언제 다 뽑겠다고 앉아 있어요? 미련스럽게. 풀 못 이겨요. 그리고 가을이 물러서는 오늘 낮에 풀을 뽑는 내게 그 사 람은 말했네 -그걸 왜 뽑고 있어요? 미련스럽게. 곧 말라 죽을 풀인데. 조용히 움직였지만 실은 발랄한 풀과 오늘에는 시름시름 앓는 풀이 그 말을 나와 함께 들었네 잠시 손을 놓고 서로 어찌할 바를 몰라서. 미련스럽게 같이 술 한잔하자는 사람에게 무주를 간다며 피하면..

매일 에세이 2024.02.21

아침은 생각한다. 문태준 시집. 창비시선471. 2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문해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시가 어려웠던 이유는 시인의 마음을 읽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본시 결함이 있기도 했지만 세상 풍파에 마음이 닳아 정교한 마음을 수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고장 난 마음을 수리해 제 기능을 회복한 것도 아닐 텐데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시인의 마력입니다. 그때에 나는 아가를 안으면 내 앞가슴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밭에 가 자두나무 아래에 홀로 서면 한알의 잘 익은 자두가 되었다 마을로 돌아가려 언덕을 넘을 때에는 구르는 바퀴가 되었다 폭풍은 지나가며 하늘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너의 무거운 근심으로 나는 네가 되었다 어머니의 ..

매일 에세이 2024.02.21

아침은 생각한다. 문태준 시집. 창비시선471. 1

서정시인, 문태준 시인을 만났습니다. 짧은 시 구절에서 자연과 동화된 듯한 시인, 자연을 읽어주는 시인을 만났습니다. 그런 마음만 읽은 것도 아닙니다. 시인 곁의 이웃들에 대한 선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이를 “타자에 대한 연민과 돌봄의 마음”이라고 문학평론가 이경수는 설명합니다. 마음 따뜻하게 하는 시집입니다. 밥값 허름한 식당에서 국밥을 한술 막 뜨고 있을 때 그이가 들어섰다 나는 그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수레에 빈 병과 폐지 등속을 싣고 절룩거리며 오는 그이를 늦은 밤 좁은 골목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이가 식당 한편 벽에 걸린 달력의 28일을 오른손으로 연거푸 짚어 보였다 무슨 말인가를 크게 했으나 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식당의 여주인은 조금도 언짢아하는 기색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짧은..

매일 에세이 2024.02.21

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재인 간행

희망이 없는 삶, 지옥일 것입니다. 지옥 같은 현실을 살면서 끝내 놓지 못 하는 것은 희망이라는 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독한 오늘을 버티게 하는 힘. 희망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를 그동안 모르고 지냈습니다. 추리소설이란 것이 사람이 죽고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추악한 욕망을 보거나, 무모한 욕심을 보면서 이를 응징하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재미가 없습니다. 통쾌함 보다는 안타까움이 줄곧 이어집니다.    비극은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면서 극한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든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뛰어듭니다. 하지만 이 또한 그 시간 그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굴레요 운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작품의 장르를 쉽게 정..

매일 에세이 2024.02.18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장편소설. 나무옆의자 간행 2

추천의 글 속에 숨겨진 불편함 이야기의 끝에는 ‘추천의 말’이라고 실명의 관계자들이 쓴 글이 있었습니다. 아마 상을 주면서 추천한 글이거나, 독자에게 읽기를 추천하는 글일 수도 있지요. 그건 그렇고 그들이 추천하는 글이 품고 있는 문약함과 비겁함이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혈연 가족을 가로질러 새로운 가족의 구성을 모색하는 문미순은 어쩌면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이 소설은 어느덧 도덕의 피안이다라고 최원식(문학평론가)은 풀이합니다. 그러면서 국가라는 장치가 퇴색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민(民) 스스로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희망의 정수박이가 빛나는 이 소설은 가장 비천한 현실 속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적 진실을 길어 올리는 소설의 본령에 문득 다가서던 것이다라고 평가합니다. 불행의 늪에 빠져 ..

매일 에세이 2024.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