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부키 간행. 장하준 지음 12

무주이장 2023. 6. 30. 14:34

호밀과 철의 결혼, 복지국가의 출현, 독일 비스마르크

 

1.

 호밀은 원래 현재의 튀르키예가 자리한 지역에서 유래했지만 북유럽 국가들의 식생활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힙니다. 사촌인데 더 섬약한 작물인 밀은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북쪽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곡물이기 때문입니다. 호밀 생산량 1위인 독일에서는 호밀은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역사적 기록에서도 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독일 역사에 등장하는 철과 호밀의 결혼은 통일 독일의 첫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주도로 주로 프로이센을 기반으로 하는 융커라 부르는 귀족 지주들과 서쪽 라인 지방에서 새롭게 부상한 중공업자본가들 사이에 맺은 정치적 동맹을 가리키는 별칭입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이 통일되기까지(1871) 그 과정을 지지했던 국민자유당과의 오랜 협력 관계를 1879년에 단절했습니다. 자유 무역을 지지했던 국민자유당을 버린 비스마르크는 호밀을 생산하면서 정치권력을 쥐고 있던 융커들을 설득해 그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새로운 보호주의적 정치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당시 라인 지방의 산업은 철강을 비롯한 중공업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우위에 있던 영국 제품들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이런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융커들이 받아들이는 대신, 값싼 미국 곡물에 관세를 부과해 그들이 생산하는 독일 농산물을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철혈 재상비스마르크가 중재해 형성된 호밀 생산자들과 철 생산자들 사이의 연합 덕분에 독일 경제는 전례 없는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철강, 기계, 화학 등의 새로운 중공업 산업이 보호벽에 의지해 성장했고, 결국 당시 세계 1위였던 영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독일인은 식료품을 더 비싼 값에 구입해야 했지만 말입니다.

 

 비스마르크의 유산은 독일 중공업의 발전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심지어 그보다 더 중요한, 독일을 훨씬 넘어서는 영향을 끼친 업적을 이루었는데, 복지 국가의 확립이 그것입니다. 복지 국가가 진보정치 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복지 국가를 처음으로 발명한 사람은 극보수의 대명사인 비스마르크였습니다. 요즈음 복지 국가를 지지하는 사람은 곧잘 사회주의자라고 불리지만 비스마르크가 복지 국가를 도입한 건 그가 ‘사회주의자’ 여서가 아닙니다. 그는 이름난 반사회주의자였습니다.

 

 비스마르크는 노동자들을 인생의 큰 충격들(산업 재해, 질병, 노령, 실업 등)에서 보호하지 못하면 그들이 사회주의에 경도되라란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스마르크가 복지 정책을 도입한 것은 사회주의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많은 사회주의자들, 특히 독일의 사회주의자들은 처음에는 복지 국가에 반대했습니다.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확립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황당하지요. 이념의 공식에 맞춰 사회를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춘 엉터리입니다. 이후 이들이 적극적으로 이 제도의 확장을 요구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