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겸손하셔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우리 예수님?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첫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습니다. 그것은 여관에 이들이 들어갈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누가복음 2:7, 아가페 쉬운성경)
성경의 기자(기록자라는 말이겠죠?)는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상식으로는 아브라함 당시의 기록도 아니고, 예수님 당시의 기록도 아닌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사람에 의해 기록이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성령(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의 인도로 성경을 기록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요령부득이라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전에도 쓴 적이 있습니다만, 예수님이 십자가 형을 받은 이유는 이스라엘의 제사장들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알력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억울하게 잡혀왔다는 사실은 당시 유대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는 알았습니다. 당연히 무죄 취지로 방면하고자 하였으나, 예수님에 의하여 기득권이 침해될 것을 염려한 제사장들은 예수님의 민중에 대한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를 겁박하여 사형을 선고하도록 강요합니다. 빌라도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과 또 한 명의 죄인 중 사면을 시키겠다며 선택하라고 합니다. 재판장에 모인 유대인들이 사면을 요구한 죄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바라바였습니다. 더하여 유대인들은 저주받은 사람이 받는 처벌 방법인 십자가에 매다는 형의 집행을 요구하여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님을 강조하려고 했고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예수님을 죽였다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사도신경도 성경의 일부일 터이니 성령의 인도로 쓰였다고 추정됩니다. 사도신경에서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고 기록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들인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시작과 끝을 모를 리 없으실 텐데, 과연 사도신경 기자에게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다고 기록하라고 했을까요? 저는 사도신경의 이 문구에 유감이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유대인 다수가 요구하는 주장을 수용 않았을 경우, 발생할 정치 사회적 갈등을 피하려 어쩔 수 없이 요구를 수용한 빌라도의 책임은 아무리 생각해도 주범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법에서는 교사범을 엄히 처벌합니다. 주범이 빌라도라고 판단하기에는 정황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과 일맥 상통하는 성경문구를 오늘 배웠습니다. 아침마다 참여하는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었습니다. 눈이 번쩍 떠지는 설명에 공감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호적 등록을 하러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에 갔습니다. 마리아는 그때 예수님을 임신하고 있었지요. 마리아가 산기를 느껴 아이를 낳을 곳을 찾아 백방으로 다녔으나 불행히도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여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낳게 됩니다. 포대기에 싼 아이를 둔 곳이 말구유였다고 하지요. 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목사님은 유감이라고 하셨습니다. 뭐라고 설명을 한지 들어보니…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그리고 말구유에 뉘어졌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 설명이 쉽게 받아들여지십니까?
성경에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것은 여관에 들어갈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설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화려한 궁궐에서 태어나셔도 겸손하게 태어나시게 된 것이다. 지상에서 아무리 화려해도 하늘나라와 비교하면 소박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사람들이 완악하고 매몰차서 아이를 낳을 여관을 제공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변명하는 비루한 설명이라는 것이지요. 눈이 번쩍 띄지 않습니까? 이런 시각에서 보면 성경에서 말구유 탄생 이유를 설명한 것이 밑바탕에 사람들의 완악함과 매몰참을 일부러 무시한 것 같지는 않은가요? 여관에 들어갈 빈방이 정말 없어서 마리아가 마구간으로 갔을까요 아님 거추장스러운 일을 피하려 방을 주지 않았을까요. 저는 김동호 목사님의 설명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의 기자(누가라고 하기도 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하지요)는 성령의 인도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사람의 시각으로 쓴 것이라는 설명이 오히려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완악하고 매몰찬 사람들이 요셉과 마리아에게 행한 냉정함을 변명하려고 ‘빈방’이 없었다고 변명하거나, 기득권을 지키려 제사장과 그 추종자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을 ‘본디오 빌라도’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으로 보면 저는 성경은 성령과는 무관하게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닐까 의심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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