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 내가 신을 믿는 이유, (신, 만들어진 위험, 리처드 도킨스, 김명주 옮김)
너무나 비과학적인 종교인들에게 질색하며 진화론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책 중 또 하나의 책이다. 그의 책을 국내 출간이 되면 다 읽었다. 인류사에 수많은 신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악착같이 설명하는 글을 읽다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에도 반발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것은 저자의 논리가 탄탄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수많은 종교인의 허황한 주장에 아연실색한 나만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세상에는 과학은 만능이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과학적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적어도 만들어진 신을 세상 모든 일의 중심에 두고 허황한 주장을 하는 일은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백신을 맞지 말라는 목사의 설교와 거기에 환호하는 신도들의 모습은 개신교인들이 미신이고 우상이라며 질색을 하는 무속인의 굿을 보는 것과 진배없다. 무속인들의 굿을 우리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기도 하지만 미국의 목사와 그 추종자들을 미국의 문화라고 옹호하기에는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다. 합리적인 세상을 좀 먹는 종교인들에 대한 비판은 그대로 수용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냐는 논란이 있다. 과학이 인간의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도덕률에 의하여 규율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과학기술은 그 자체가 가치중립적이라고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기술이 무슨 도덕이 있느냐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의해 세상이 망가지는 구체적인 예로 우리는 무기 개발을 든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사력을 다해 협조를 하고는 폭탄 제조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주장은 위협적이다. 과학이 발전하며 사람의 생활이 편리해지고 육체적으로 부담을 줄이는 많은 편익을 보기도 하지만 가치중립의 태도로 일관하여 비극을 방조하고 조장하는 일에 눈을 감는 것은 옳지 않다.
세상을 사는 것에는 규칙이 필요하다. 규칙은 가치를 담고 있다. 중세 암흑시대의 가치는 신이 중심이었다. 신을 모시는 것은 성직이고 권력이었다. 신의 가치체계를 인간세상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이상이었다. 규칙은 신을 모신다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운영되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중세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신의 명령이 재현되는 사회에서 신의 사제들은 부패한 권력으로 대중을 억압하고 호도하고 사익을 추구했다. 그때 옳다고 생각한 가치체계가 오늘은 억압된 암흑시대라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관이 바뀐 때문이다. 절대자인 신의 명령이 시대를 따라 가치가 바뀐 것이다. 왜 그럴까?
신이 내린 명령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신을 만든(또는 인식한) 사람들에 의해서다. 말씀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만든 자(인식한 자)가 판단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불경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모습은 믿는 우리들의 거울에 비친 상을 보는 것이다. 불신지옥에 빠뜨리는 하나님의 상, 면죄부 판매를 정당화하는 하나님의 상, 가난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상, 목사의 부패를 방치하시는 하나님의 상 등등 이 상은 하나님의 진상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허상의 하나님이다.
과학이 아무리 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니라고 해도, 과학을 믿으면 상식과 합리가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든다고 해도 인간의 한계는 주어진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비극을 조장한다. 그런 비극을 해결하는 일은 인간들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하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더욱 끔찍해지고 인간은 더욱 잔인해지는 양상이다. 서로 대화조차 할 수 없는 간극이 인간들 사이를 벌린다. 인간이 만든 위험은 만든 사람이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이지만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만든 위험을 우리가 해결할 수 없으니 생존에 유리한 이기적인 모든 행위가 합리화된다. 리처드 도킨스가 받은 도전은 그가 준 결론이 전체 사회의 이익을 위한 희생이 존재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희생이 전체 사회의 생존에 필요했다는 설명은 구차하다. 내가 죽고 없는데, 사회의 생존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다.
이제 내가 신을 믿는 이유를 고백하여야 하겠다. 위험을 만들고 위험을 해결하지도 못하는 인간을 믿는 것은 쪽팔려서 못하겠다. 만들어진 신이건 존재했던 신을 인식한 것이건 나는 인간의 선함을 장려하는 신을 믿겠다. 복수와 질투로 잔인함을 드러내지 마시라고 대들겠다. 그러면서도 과학이 설명하는 미신을 경청하겠다. 창조주가 과학의 발전을 허락해서 과학이 발전했다. 발전한 과학이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도 신이 허락한 일이다. 세상이 끝나는 그날 신의 뜻은 알게 되겠지만 그날까지는 이 세상이 조금은 더 선해지고 우리가 서로 속을 트고 대화할 수 있는 세상을 신에게 요청할 생각이다. 나의 기도문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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