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 흰여울 마을 탐방기
내 고향은 부산입니다.
중학교를 다니면서 사춘기를 통과했습니다. 부모님에게 소용도 없는 불평을 많이 했습니다. 많이 가난했지요. 그렇다고 하루 세 끼를 못 먹은 적은 없지만, 매일 한 끼 정도는 늘 수제비나 칼국수를 먹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해서 한 번도 음식을 불평한 적은 없었지만, 늘 궁핍감을 느꼈습니다.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는 일이 있는 날이면 궁핍감은 더 컸습니다. 비교대상이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주눅이 들고는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궁핍감이 저의 자신감을 많이도 해쳤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 저의 궁핍감을 친구들에게 하소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형편이 적어도 학교 내에서는 중상층이거나 상층부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우리 집은 양친이 생존해 계시고, 경제활동을 하셨지만, 많은 친구들이 편모나 편부의 가정이었습니다. 제가 느낀 궁핍감은 그들에게는 사치였습니다. 아마도 친구들도 제가 가진 왜소함이 내면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친구들끼리 한 달에 한 번 집을 방문하여 밤을 새워 놀기로 계획을 세웠고 실행을 했습니다. 그 친구들이 44년 세상살이 속에서 연락을 하고 만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같이 가난하고, 같이 왜소함을 느끼던 한 친구의 집이 영도구 영선동, 지금의 흰여울 마을에 있었습니다. 흰여울 마을을 방문하고는 저는 그 친구의 집을 찾아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교회가 건립되면서 철거가 되었을 수도 있고, 저의 기억으로 찾을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흰여울 마을 바다 쪽으로는 낭떠러지가 있고 그 아래 부산 외항이 있습니다. 늘 언제나 가도 외항에는 선박들이 정박해 있습니다. 낮에는 햇빛을 받아 늠름하고, 밤에는 불을 밝혀 큰 덩치에도 교태를 부려 황홀한 야경을 선사합니다. 이제는 약간의 개발을 통하여 바닷가에 새로운 산책길을 만들었고, 낭떠러지 바로 위에도 길을 냈습니다. 그 길 사이에 계단을 놓고 서로 연결했습니다. 추억은 그대로인데, 풍경은 다 바뀌었습니다.
제가 가진 추억은 버스를 내려 계단을 타고 좁은 골목길을 내려가면 부엌이랄 것도 없는 공간을 지나 자그마한 미닫이 문을 밀고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좁은 단칸방입니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친구의 어머니가 작은 밥상에 준비한 술상을 건네시고는 집을 나가십니다. 우리에게 방을 내주시고 밤을 어머니의 이웃집에서 신세 지시고는 하셨습니다. 우리끼리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술잔을 나누며, 개똥철학과 우리의 미래를 얘기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 외항 야경은 기억에 없습니다. 당시 그곳에는 공동화장실이 있었고, 밖으로 나오는 경우는 그곳을 방문하는 것 외에는 따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당시 부산 외항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친구 집이 서 있는 낭떠러지 끝까지 접근할 수 없었고, 바다 야경을 본 적도 없습니다.
가난의 풍경은 공동화장실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공동화장실의 특성상, 화장실 청소는 거주민들이 가족 수에 맞춰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부녀자들조차 영도 조선소에서 품을 팔아야 하루를 살 수 있었던 형편상 모두가 다 부담할 수는 없었고, 이로 인하여 화장실 청소는 늘 뒷일이 되었습니다. 푸세식 공동화장실은 늘 발판을 넘으려는 배설물로 간당간당했던 기억입니다. 여러 번을 방문했지만, 늘 그랬습니다. 장마가 오거나, 많은 비가 내리는 날이면 동네, 일을 쉬는 남정네나 억센 아낙네가 배설물을 퍼서는 아래 낭떠러지로 비에 실어 보냈다는 이야기는 무용담도 절망적인 얘기도 아닌 그저 생활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마을이 ‘흰여울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길에서 걸레를 빠는 아줌마의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하는 젊은이들과 자신을 구경하는 이들을 풍경인 양, 대수롭지 않게 인식하는 아주머니가 공존하는 삶의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사실인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영화 ‘친구’에서 네 친구가 수영을 하며 조오련이 하고, 거북이하고 수영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기는지 묻던 그곳을 저는 이곳 저 낭떠러지 아래 바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자맥질을 하지 않았던 저 아래 바다는 맑고 푸르기만 합니다.
어쩌면 저기 유심히 보면 바다 거북이가 헤엄치는 걸 볼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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